[대한포럼] 말이 앞서는 반부패

[대한포럼] 말이 앞서는 반부패

양승현 기자 기자
입력 2002-11-19 00:00
수정 2002-1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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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방지는 무엇보다 (정치지도자들의) 정치적 신념이 기초를 이뤄야 성공할 수 있다.” 추아 싱가포르 부패조사청 청장의 말이었다. “호주의 부정부패는 갈수록 영리해지고 있다.유·무선 전화통화를 이용하다가 발각되니까,최근 공식 문서의 형식을 갖춰 메시지를 주고받는 수법이 등장했다.” 폴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부패방지청 교육국장이 전한 자기나라 고위공직자의 부정 실태였다.

“부패방지기구가 조사권을 갖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그러나 홍콩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도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국민의 지지와 성원,그리고 정치인들의 책임의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윙 홍콩 염정공사 집행처 부처장이 ‘한국의 부패방지위가 조사권을 가질 수 있는 묘책을 알려달라.’는 질문에 대해 내린 진단이다.

우리보다 먼저 부패방지기구(ICAC)를 운영해온 국가들의 고위관계자가 그동안 축적해온 경험을 털어놓은 내용들이다.공교롭게도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부패방지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붕떠버린 다음날인 지난 15일,부패방지위원회가 주최한 제1차 국제 부패방지기구 포럼에서 논의된 얘기였다.멀게는 1973년,가깝게는 1980년 반부패기구를 창설한 반부패선진국과 이제 갓 돌을 지난 우리와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일지 모르겠다.

대선이 겹친 올해는 반부패시스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여느 때와 달리 매우 높았던 게 사실이다.특히 대통령의 두 아들들이 구속되는 등 임기말 권력형 비리가 잇따라 터지면서 대선주자들이 저마다 부패방지프로그램을 앞다퉈 발표한 때문이다.‘대통령 친인척 비리 전담 감찰기구’ 설치를 약속하는가 하면,후보 수락연설에서 ‘고위공직자 비리 조사처’ 신설을 확약한 이도 있었다.반부패에 대한 국민감정을 지지표로 연결시키려는 ‘속이 뻔히 드러나보이는’ 공약들이었으나,그래도 뭔가 구체적인 방안이 마련될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했었다.

그러나 우리 정치지도자들은 역시 말이 앞섰다.‘반부패 제도화를 우리 당이 주도했다.’라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려는,명분싸움으로 개정안은 상정조차 되지 못한 것이다.마치 반부패의 현주소를 보는것 같아 씁슬하다.누가 뭐래도 음성적인 정치자금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정치권이 부패의 중심에 서있다고 할 수 있다.

몇달전 일이다.분당 백궁·정자지구의 특혜 분양의혹이 연일 신문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을 때였다.틀림없이 엄청난 정치자금이 조성됐을 것이라는 한 친구의 물음에 “이젠 모든 부패가 대통령의 통치자금과는 전혀 관계가 없기 때문에 액수가 엄청날 수가 없다.”고 딱 잘라 말한 적이 있다.굳이 사족(蛇足)을 붙이자면 한국형 부패도 이제 과거와 달리 ‘구멍가게처럼 영세해지고,수법만 다양해질 뿐’이라는 설명을 해주고 싶었다.사실 통치권 차원에서 접근했던 5·6공때와 달리 문민정부·국민의 정부는 대통령 친인척과 그들의 측근,그리고 이들과 친분있는 정치브로커들이 ‘호가호위(狐假狐威)한 부패’들이다.

이처럼 한국형 부정부패도 정체되어 있지 않고서 호주처럼 변하고 지능화되어 간다.그런데도 어찌된 일인지 정치인들의 반부패에 대한 의지만은 매양 제자리에서 한결같다.인간의 탐욕이 없어지지 않는 한 지구상에서 부패는 사라질 수 없다고 한다.‘언젠가는 발각되어 처벌을 받는다.’는 확실한 믿음을 심어줘야만 유혹의 언저리에서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게 된다는 것이다.제도는 그래 필요한 것이고,부패방지법개정안은 그 기나긴 장정의 겨우 첫발걸음일 뿐이다.첫걸음을 옮기자.

양승현 논설위원 yangbak@
2002-11-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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