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숙 칼럼] ‘北女’와 미국

[임영숙 칼럼] ‘北女’와 미국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2002-10-03 00:00
수정 2002-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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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톰한 입술에 오똑한 콧날,시원한 이마에 자연스럽게 흘러 내린 생머리 몇 가닥이 고혹적이다.입을 반쯤 벌린 채 어딘가를 쳐다보는 북한 여성응원단의 클로즈업된 모습은 같은 여성이 보기에도 즐겁다.연푸른 빛깔의 한복 저고리에 꽂힌 붉은 색 바탕의 인공기와 김일성 배지마저도 아름다운 색상 조화로 다가올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 북한 응원단 대부분이 빼어난 미모의 여성으로만 구성됐다는 것은 부자연스럽다.‘치어 리더’라는 양념이 있긴 하지만 스포츠 경기의 응원단이 미모의 여성으로만 구성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탈북 인사들은 “나도 북한에 그렇게 예쁜 여자가 많은 줄 몰랐다.”면서 “이번에 방한한 응원단의 경우 가장 먼저 인물을 보고 신체검사를 거쳐 마지막으로 출신성분을 통과한 사람만으로 구성됐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굳이 탈북 인사의 말을 빌리지 않아도 북한 응원단의 선발 기준이 미모였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들에 대한 우리 언론과 시민들의 반응도 착잡한 마음을 갖게 한다.정작 경기보다 북한 응원단이 화제의 중심이 돼 아시안게임 자체가 실종된 듯하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지난 1987년 KAL기를 폭파시킨 김현희의 경우도 그녀의 범죄행위보다 미모에 더 관심이 쏠렸다.외모를 여성에 대한 최우선 평가기준으로 삼는 그릇된 인식과 성의 상품화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현상들이다.

우리 사회의 여성 외모 지상주의는 젊은이들에게 “여성의 성공은 미모에 좌우된다.”(네티즌 조사결과 95%)는 생각을 주입시키고 광적인 성형수술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터이다.성인 10명 가운데 1명이 위험을 무릅쓰고 성형수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이런 현상이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나 월스트리트 저널에 우스꽝스럽게 보도되기도 했다.부산 아시안게임의 ‘北女신드롬’이 외모 지상주의를 더욱 강화시키고 여성을 ‘제2의 성’으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걱정스럽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강경 정책이 가져 올 파장을 생각하면 사실 아무 것도 아닌 셈이다.국무부 제임스 켈리 동아태 담당 차관보를 비롯한 미국의 특사단이 오늘 평양을 방문한다.미국은 특사 방북을 결정하고도 무력 공격 대상인 이라크와 함께 북한을 대표적인 ‘불량국가’로 꼽는 등 대북 강경기조를 거듭 천명 해 왔다.따라서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북·미간의 첫 공식대화인 이번 회담이 어떤 결과를 가져 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최전성기의 로마제국에 비견되는 힘으로 미국은 지금 팍스 아메리카나를 구가하고 있다.그러나 미국의 일방주의는 국제평화의 가장 큰 교란 요인 중 하나로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클린턴 행정부에서 국방부 차관보를 지낸 조지프 나이는 무력에 의한 ‘하드 파워’를 중시하는 부시 정권의 우파 세력들을 비판하며 ‘소프트 파워’의 사용을 권고한다.나이가 말하는 ‘소프트파워’는 ‘국제 정치 무대에서 적절한 의제를 제시해 다른 나라들을 사로잡는 일’‘미국이 바라는 것을 다른 나라들이 원하게끔 만드는 것’이다.즉 힘으로만 밀어붙이지 않고 대화하고 이익을 공유함으로써 다른 나라가 미국을 따라오게 만드는 부드러운 문화적 외교적 기술을 뜻한다.

북한이 부산 아시안게임에 미녀 응원단을 보낸 것과 같은 왜곡된 부드러움이 아니라 진정한 ‘소프트 파워’를 미국이 활용한다면 한반도 정세는 안정될 것이다.이번 북·미 회담이 바로 미국의 부드러운 힘을 보여주는 자리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거의 절망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북한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듯 오만한 패권주의로 몰아붙인다면 그 파국의 결과는 북한과 한반도 전체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미칠 것이다.로마 제국도 결국 패권주의 때문에 멸망했다.

임영숙 / 미디어연구소장 ysi@
2002-10-03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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