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세상] 요즘의 미국, 요즘의 북한

[열린세상] 요즘의 미국, 요즘의 북한

박형준 기자 기자
입력 2002-09-30 00:00
수정 2002-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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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특사가 북한을 방문한다.북·일 관계에 이어 북·미관계도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하지만 미국은 포용보다는 강경 기조에서 북한의 태도를 타진하는 데 무게를 두는 듯하다.

어쨌든 요즘의 미국,요즘의 북한은 사뭇 역설적 느낌을 준다.미국은 세계최강국이자 유연성과 개방성을 자랑으로 삼는 나라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의 하나이고 ‘벼랑 끝 외교’와 완고함으로 버텨온 나라다.한데 최근 이 두 나라의 움직임은 자신의 이미지에 걸맞지 않는다.

부시의 미국은 9·11테러 이후 반테러전선을 중심으로 신세계질서를 능동적으로 구축하는 전략에 몰입해 왔다.이 전략은 9·11테러로 인한 세계적인 연민과 분노,그리고 테러를 없애자는 선의(good will)를 바탕으로 아프칸 전쟁에서 유례 없는 세계 동맹을 구축하는 성과를 거두었다.미국의 헤게모니를 보장하는 이런 동맹 체제를 지속하려면 ‘공공의 적’이 계속 있어야 하는 바,부시 정부는 이라크를 바로 지목했다.

하지만 후세인 정권을 심판하고자 하는 미국의 기획은 차질을빚고 있다.우선 주요 국가들의 협조가 원활치 않다.중국과 러시아는 일찍부터 등을 돌렸고,슈뢰더의 독일이 뒤를 이었다.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은 아셈 회의에서 “전쟁에 대한 분별력과 책임을 중시하는 지성적 태도”를 강조하면서 전쟁불가피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미국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고이즈미 총리조차 대 이라크 전에 대해 고개를 저었다.영국과 이탈리아가 미국 편에 있으나,국제 사회의 동의 없이 전쟁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국제 정치에서 ‘역고립’되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전쟁에 관한 한 단결하는 전통을 가진 미국 내에서도 부시에 대한 비판이 고개를 들고 있다.민주당 대슐 상원 원내총무는 “부시가 선거를 겨냥해 전쟁을 정치화하고 있다.”고 비난했고,앨 고어 전 부통령은 9·11테러 이후 조성된 세계 사회의 우호적 연대의식을 적대감과 우려감으로 변질시켰다고 일침을 가했다.

미국 경제의 불안으로 미국 언론의 논조도 점점 전쟁 회의론으로 바뀌고 있다.부시의 리더십이 독단주의에 빠져 유연성이 결여되어 있음에 대한 안팎의 비판으로 부시 정부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에 비해 요즘 북한은 전례 없이 유연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중국 및 러시아와 결속력을 과시한 뒤 일본과 전격적으로 정상회담을 열어 공동선언을 이끌어냈다.고이즈미와 한국 정부를 매개로 미국이 대북 대화에 나서도록 압력을 가하는 노련한 ‘외곽 전술’도 병행했다.아시안게임에도 참여하여 남북관계의 진전을 희망하는 메시지를 전했다.무엇보다 큰 사건은 신의주를 북한 체제와는 완전히 다른 자본주의 특구로 만드는 조치이다.중국마저 놀라고 있는 이 조치는 개방 개혁을 향한 북한 내부의 이견이 해소되었음을 알리는 징후이자,이제부터 북한의 변화가 언제든지 제스처로 끝날 수 있는 정치 전술적인 변화가 아니라 한번 시작되면 되돌리기 어려운 사회경제적 변화로 이어질 가능성을 알린다.

이 시점에서 미국 특사의 북한 방문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악의 축’ 인식을 바꾸지 않고,북한이 무기 사찰과 관련한 선물 보따리를 냉큼 주지 않는 한 진전을 기대하기 어려울지 모른다.하지만 북한의 변화 의지가 확인된다면 미국으로서도 강경 입장을 고수하긴 어려울 것이다.한반도에서 ‘군사 논리’가 ‘외교 논리’로 전환하는 계기가 과연 마련될 것인지 주시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가장 경직된 나라가 유연하게 행동하고 가장 유연한 나라가 경직되게 행동하는 역설적 상황을 보면서 이런 변화의 시기야말로 지혜로운 리더십이 국가 이익에 참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마키아벨리의 말처럼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여우의 간지와 사자의 결단력을 함께 구사할 수 있는 지도력이 요구되는 것이다.요즘의 미국,요즘의 북한을 바라보며 문득 우리의 대권주자들은 과연 역동적인 국제 정세를 주도할 안목과 능력을 준비해왔는지 묻고 싶어진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 사회학
2002-09-3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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