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이 고고학자의 영역이라면 무덤의 복원은? 물론 고고 및 역사학자의 도움이 필수적이겠지만,작업 자체는 장인(匠人)의 영역에 속한다.그런 까닭에 발굴보고서와 복원보고서를 한데 묶기는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선문대 고고연구소와 강화군이 낸 ‘강화 오상리 지석묘-발굴 및 복원 보고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그러나 이 보고서가 갖는 의미는 그저 ‘최초’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특히 문화재 보호가 주요 업무의 하나인 지방자치단체들은 오상리 고인돌무덤군(群)의 발굴 및 복원 과정을 전범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보고서에서는 강화군 당국의 문화재 보호의지가 읽힌다.강화 고인돌은 2000년 11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보고서는 고인돌이 단순히 ‘문화유산’을 뛰어넘어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케 한다.
오상리 고인돌군은 고려산 서쪽의 낙조봉(落照峰)능선 끝자락에 있다.해발76m,자그마한 야산의 낙타등 같은 구릉에 12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강화군은 고려산 적석사로 올라가는 도로가 뚫리면서 일부 고인돌이 훼손되자 2000년 4월 선문대 고고연구소에 한달 일정으로 발굴조사를 의뢰했다.연구소장인 이형구교수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 오상리를 포함한 일대 100여기의 고인돌을 확인하여 조사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교수팀은 오상리 산 125 일대 200여평 발굴에 들어갔다.강화군의 문화재 보호의지는 여기서 부터 드러난다.묻혀 있는 고인돌이 생각보다 많고,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하자 발굴기간을 즉각 한달 늘렸다.
5월20일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에서 조유전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지도위원들은 “추가발굴 종료와 함께 복원하여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화군은 이런 뜻을 받아들여 추가발굴과 사적공원화를 위한 예산확보에 들어갔다.그 결과 2차 발굴은 지난해 6월27일부터 9월29일까지 이루어졌다.복원작업은 발굴과 병행됐다.
유례가 없는 발굴 및 복원보고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할 수 있었다.강화군의 물흐르듯한 행정적 지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오상리 고인돌무덤군 발굴에 따른 학문적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고인돌은 지금까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묘제로 알려져왔다.그러나 오상리 발굴 결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청동기시대의 무늬없는 토기조각과 함께 나왔다.
능선 위 붉은 흙 층에서는 석영으로 만든 다각면원구(polyhedrol)가 출토됐다.
다각면원구는 일종의 공 모양 석기로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유물로 꼽힌다.오상리 일대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에 걸쳐 인류가 줄곧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서동철기자 dcsuh@
따라서 선문대 고고연구소와 강화군이 낸 ‘강화 오상리 지석묘-발굴 및 복원 보고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그러나 이 보고서가 갖는 의미는 그저 ‘최초’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특히 문화재 보호가 주요 업무의 하나인 지방자치단체들은 오상리 고인돌무덤군(群)의 발굴 및 복원 과정을 전범으로 삼아도 될 듯하다.
보고서에서는 강화군 당국의 문화재 보호의지가 읽힌다.강화 고인돌은 2000년 11월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보고서는 고인돌이 단순히 ‘문화유산’을 뛰어넘어 대표적인 ‘문화상품’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이유를 짐작케 한다.
오상리 고인돌군은 고려산 서쪽의 낙조봉(落照峰)능선 끝자락에 있다.해발76m,자그마한 야산의 낙타등 같은 구릉에 12기가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
강화군은 고려산 적석사로 올라가는 도로가 뚫리면서 일부 고인돌이 훼손되자 2000년 4월 선문대 고고연구소에 한달 일정으로 발굴조사를 의뢰했다.연구소장인 이형구교수는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에 걸쳐 오상리를 포함한 일대 100여기의 고인돌을 확인하여 조사보고서를 낸 바 있다.
이교수팀은 오상리 산 125 일대 200여평 발굴에 들어갔다.강화군의 문화재 보호의지는 여기서 부터 드러난다.묻혀 있는 고인돌이 생각보다 많고,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기 시작하자 발굴기간을 즉각 한달 늘렸다.
5월20일 발굴현장에서 열린 지도위원회에서 조유전 당시 국립문화재연구소장 등 지도위원들은 “추가발굴 종료와 함께 복원하여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화군은 이런 뜻을 받아들여 추가발굴과 사적공원화를 위한 예산확보에 들어갔다.그 결과 2차 발굴은 지난해 6월27일부터 9월29일까지 이루어졌다.복원작업은 발굴과 병행됐다.
유례가 없는 발굴 및 복원보고서는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할 수 있었다.강화군의 물흐르듯한 행정적 지원이 없었으면 어려웠을 일이다.
오상리 고인돌무덤군 발굴에 따른 학문적 성과도 만만치 않았다.고인돌은 지금까지 청동기시대를 대표하는 묘제로 알려져왔다.그러나 오상리 발굴 결과 신석기시대를 대표하는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청동기시대의 무늬없는 토기조각과 함께 나왔다.
능선 위 붉은 흙 층에서는 석영으로 만든 다각면원구(polyhedrol)가 출토됐다.
다각면원구는 일종의 공 모양 석기로 구석기시대의 전형적인 유물로 꼽힌다.오상리 일대에서 구석기∼신석기∼청동기 시대에 걸쳐 인류가 줄곧 살아왔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서동철기자 dcsuh@
2002-07-11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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