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굄돌] 견인 스티커 붙은 똥차

[굄돌] 견인 스티커 붙은 똥차

고은님 기자 기자
입력 2002-05-09 00:00
수정 2002-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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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마을버스를 이용한다.그런데 정류장이 조금 외진 곳에 있는 데다 워낙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어서 멀리 버스가 보이면 미리부터 크게 손을 흔들어야 무사히 탈 수가있다.잠시라도 딴짓을 했다가는 하필이면 그 순간,버스는어김없이 지나가고 만다.그런데 그 마을버스 정류장에 벌써 한달 째 똥차가 서있다.

흔히 오래되고 낡은 차를 가리켜 부르는 의미로서의 ‘똥차’가 아니라,초록색 몸체에 굵은 호스를 둘둘 감아올린진정한 의미의 ‘똥차’,정화조의 분뇨를 푸는 차 말이다.

처음엔 “아니,누가 똥차를 여기에 세워뒀지? 근처에서누가 똥 펐나?” 하며 재밌어 했고,일주일 후에도 여전히서있는 모습을 봤을 땐 “똥차도 개인 소윤가? 개인택시처럼 차주인이 몰고 출퇴근 하나?” 했다.그렇게 한달 여가된 오늘,차 앞유리에 빛바랜 ‘주차위반’ 경고장과 함께‘견인조치 하겠다’는 붉은 스티커가 붙어있었다.순서상경고장이 먼저 붙었을 것이고 한 시간 쯤 후 견인안내장이 붙었을 것이다.어디어디로 차를 끌고 갔으니 찾으러 오라는 붉은 딱지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 똥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 날짜를 확인하니 견인안내장이 붙은 지 벌써 여러 날이 지났는데 말이다.음료수 하나 사갖고 나온 사이에도 감쪽같이끌고 가버리는 경우들에 비하면 정말 놀라운 일 아닌가.왜 끌고 가지 않을까?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났다.어쩐지 그 똥차가,주차위반이니 견인이니 하는 위세(?)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태연자약하게 버티고 서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정말 견인차가 와서 끌고 간대도,어쩌면 좋아- 하며 발을 구르는 대신,해마다 한번씩 뒤집어 엎는 도로 위에 오물을 뚝뚝 떨구며 갈 것 아닌가.

그 광경을 생각하니 자꾸 웃음이 났다.여고시절,등교길에 똥차를 보고 ‘아침부터…’ 하면서 언짢아 했던 적이 있다.그러나 다음 순간,막 작업을 끝낸 차 위에 앉아서 도시락을 맛있게 드시는 아저씨를 발견하곤 코를 틀어쥔 내 손이 몹시 부끄러웠었다.물론 길가에 장기주차를 해놓는 건분명 불법이다.변명할 수 없는 일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견인안내장을 붙이고도 여전히 그렇게 서있다는 사실이은근히 재미있고,그 위에서 맛있게 식사를 하시던 예전 그 아저씨의 모습까지 겹쳐지며 슬그머니 웃음이 나는 걸 보면… 아마 나는 견인차보다는 똥차에 가까운 소시민인 모양이다.



△ 고은님 시나리오 작가
2002-05-09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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