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修辭學과 정치현실

[데스크 칼럼] 修辭學과 정치현실

양승현 기자 기자
입력 2002-01-11 00:00
수정 2002-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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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여야 3당 대표를 특별인터뷰하고 나서 느낀소감은 ‘정치는 역시 수사학(修辭學)’이라는 것이다.이들의 얘기를 듣다보면 우리 미래는 장밋빛이다.새 정부가들어서거나 내각제가 되기만 하면 ‘부패 게이트’ 없는살 만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다.예나 지금이나정치 지도자는 자기 논리로 철저히 무장한 ‘언어의 전사(戰士)’들이었다.

인터뷰 분위기는 당의 진로만큼이나 달랐다.이회창 총재는 예전과 달리 부드러움을 가미했지만 깐깐함이 넘쳐났고,한광옥 대표는 소탈하면서도 의리의 냄새가 물씬 풍겼다.

김종필 총재(JP)는 결기를 내보였으나 백전노장답게 유유자적했다.

답변 태도 역시 이 총재는 웃음으로 대신하며 정해진 금을 넘지 않는 완고함을 보였다.한 대표는 미묘한 질문에는 “조금만 기다려 달라”며 당과 자기의 진로를 분리하려애썼고,JP는 자리를 뜨려는 기자에게 “아직 할 얘기가 남았다”면서 연신 떡과 차를 내놓으며 손님 대하듯했다.

3당 대표의 경륜을 들으면서 모처럼 평온함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우리정치가 대결구도 속에서 지나온 탓이리라. 다수가 되려한 소수 여당의 끈질긴 노력과 정권을 되찾으려는 다수 야당의 사활을 건 사수로 평행선을 달려온 지난 4년이다. 이제 그 싸움이 서서히 종반으로 치닫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아직 11개월이라는 한국정치에서는 ‘긴 시간’이 남아있긴 하나 수의 싸움은 더 이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인터뷰는 여야가 각자의 비전을 정리하고 12월 대선의 출발선상에 서려는 신호탄이었다.이왕이면 부드럽게 보이고(이 총재),가능하면 개혁성을 부각시키고(한 대표),어떻게해서라도 비세(非勢)의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석양의장관(JP)을 보여주려 했던 게 아닌가 싶다.

하나 그 때뿐,현실의 정치는 달랐다.인터뷰 속의 정치일뿐이었다.게이트로 세상이 시끄럽고,이젠 청와대로까지 그 파장이 미치는 형국이다.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셨던수석들이 게이트에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단서들이 포착되고 있다.

윤태식·이용호·진승현씨 모두 한때 잘나가던 ‘상식인’을 가장했던 사람들이라 그 불똥이 어디로 튈지 알 수없다.멀쩡하게 보였던 그들이 권부의 누구를 만나고,정부의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는 지 부탁과 도움에 익숙한 우리 문화로서는 가늠할 길이 없다.정말 ‘밤새 안녕’인 세상이다.

그러나 임기말 혼돈의 와중에 신년인터뷰에서 찾은 희망이 있어 다행이다.그 포장이야 어떻든 정치권이 새로운 단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떨거지 정치문화’,‘제왕적총재제도' ‘지역 패권주의’와 같은 지난 시대의 정치를매듭지으려는 역동성의 발견이었다.뒤뚱거리면서 넘어질듯 해도 우리도 모르게 사회가 투명한 쪽으로 한 발짝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대나무가 가늘지만 높이 자라는 것은 해마다 매듭을 짓고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사람이 철이 들어가는 것도 이립(而立·30),불혹(不惑·40),지천명(知天命·50)과 같이 나이에 걸맞는 직분과 소명이 있고,거기에 맞추려는 노력 때문일 것이다.

연말 대선도 한 시대를 매듭짓고 새로운 비전이 열리는우리정치의 나이테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승현 정치팀장 yangbak@
2002-01-11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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