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천망회회(天網恢恢)

[씨줄날줄] 천망회회(天網恢恢)

이용원 기자 기자
입력 2001-12-29 00:00
수정 2001-1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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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타계한 소설가 이병주씨는 ‘지리산’‘산하’‘관부연락선’등 한국 현대사를 무대로 한 역사소설로 이름을 날렸지만 그의 초기 작품 중에는 주옥같은 단편도 적지 않다.그 가운데 하나가 ‘천망(天網)’(원제 ‘매화나무의 인과’)이다.시골 마을의 대지주인 영감이 탐욕에 눈멀어 순간적으로 살인을 한 뒤 그 비밀을 목격한 머슴과의 관계가 차츰 역전되면서 일가족 모두가 몰락해 가는 과정을 그렸는데,추리적 기법에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짙어오싹한 기분마저 들게 하는 작품이다.

노자의 도덕경 73장에는 천망회회(天網恢恢)소이불실(疏而不失,失 대신에 漏(루)를 쓰기도 한다)이란 구절이 있다.‘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성기긴 하지만 빠뜨리지 않는다’고 풀이된다.이에서 비롯된 천망이란 말에는,사람이 죄를 짓고도 인간사회의 그물(법망)을 피할 수는 있으나결국 하늘의 그물은 피하지 못해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하긴 도덕경 이전의 기록인 시경(詩經)에도‘천지강망(天之降罔,罔=網)’‘천강죄고 ’같은 표현들이 들어 있으니 이같은 사상이 얼마나 오랜 뿌리를 가졌는지알게 된다.

지난달 중순 ‘수지 김’ 사건의 진상이 14년 만에 공개되는 것을 지켜 보면서 ‘하늘의 그물’을 다시 한번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제 아내를 숨지게 하고도 이를 은폐하고자 고인을 북한 간첩으로 매도한 인물,이후 국가정보기관의 비호를 받으며 성공한 벤처기업가로 행세하던 자는살인죄 공소시효 마감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발각돼 이제법의 심판을 기다린다.또 정권안보를 목적으로 간첩사건을조작해 한 가족을 파멸로 이끈 자들은 그 추악한 실체를다시 한번 국민 앞에 드러냈다.이 어찌 하늘의 그물이 그들을 잡은 것이 아니라고 강변하겠는가.

2001년 한 해를 둘러보면,우리 사회에는 하늘의 그물이머리 위로 덮쳐 오는 줄 모르고 여전히 거짓과 부정으로일관하는 자들이 적지 않다.최종길 교수·장준하 선생 등을 포함해 의문사 진상규명의 대상이 된 사건의 관련자들,진승현·이용호 게이트 등 각종 비리·의혹사건에 연루돼국민에게 죄를 짓고도 오리발을 내미는 자들이 그들이다.

그들이야말로‘하늘의 그물은 넓고도 넓어,성기긴 하지만빠뜨리지 않는다’는 의미를 되새기기 바란다.

이용원 논설위원ywyi@
2001-12-2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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