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턱닳는 ‘철학원’/ ‘족집게’45만명 복채 천차만별

문턱닳는 ‘철학원’/ ‘족집게’45만명 복채 천차만별

유진상 기자 기자
입력 2001-12-19 00:00
수정 2001-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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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학 특별상담중-자녀의 장래를 전문가와 상의하세요.”대학 입시철인 요즘 철학관을 비롯한 점술집에 나붙은 문구다.

연말연시인 데다 사상 유례없는 취업한파,대학입시,지방선거 등을 앞두고 점집들이 밀려드는 운명 상담자들로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역술인들은 더도 덜도 말고 ‘요즘만 같았으면 좋겠다’며 들어오는 복채에 휘파람을 불고 있다. 그러나 전국 45만명을 헤아리는 이들은 고소득을 올리는 유명 역술인조차도 세금을 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공평한 세부담과 세원발굴을 외치는 국세청은 아직 그 실태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여서 정도세정의 의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실태와 문제점.

[점집·철학관 얼마나 되나] 공식적인 집계는 나와 있지 않다.다만 한국역술인협회나 무속인 조직인 대한승공경신연합회에 따르면 역술인은 정회원 10만명(정회원 5만,준회원 5만)에다 비회원수가 1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한다.무속인 수도 전국적으로 25만명(정회원 14만2,000여명)을 헤아린다.역술인과 무속인을 합치면 45만명이 되는 셈이다.

역술인협회에서 공식적으로 배출되는 인원만도 한해 100∼200여명.사설학원과 일부 철학원에서는 ‘속성코스’까지 만들어 역술인을 양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임을 감안할 때 그 숫자는 부지기수다.요즘엔 역학서 한번 읽어본 사람이면 모두 도사님으로 불릴 정도로 역술인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

또 사이버상 점집과 카페점집 등이 늘면서 ‘점술 전성시대’를 이룬다.

[세금 없는 인기직종] 요즘 신문지상이나 주·월간지 광고에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역술인 광고다.전면을 할애하거나 5단 광고가 주류를 이룬다.

취직·입학·관운을 내세워 심기가 불안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다.이른바 ‘용하다’고 알려진 철학관은 ‘사주팔자·성명학 속성완성’이란 문구와 함께 수강생을 모집하는 광고도 흔히 볼 수 있다.문화센터에도 주역강좌가 인기를 끈다.

역술학원이나 주역풀이 전문학원 등 동양철학 전문 학원이나 학술단체에도 학생·직장인들의 수강신청이 늘고 있는 추세다.

문제는 학문적인 연구보다는 아예 ‘돗자리 깔고 전문 역술인 행세’를 해보자는속셈으로 학원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

수강생 모집요강에도 ‘사무실 없이도 돈버는 사업’등의 문구를 앞세워 돈벌이 수단으로 수강생들을 부추기고 있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함량미달인 역술인들도 많지만 이들을규제할 방법은 아무것도 없다.

서울 동작구 불교아카데미 대자원 임선정 원장(‘신의 땅’ 저자)은 “요즘 역학이나 명리학을 배워보겠다는 사람들의문의가 부쩍 늘었다”면서 “자기성찰을 위한 공부가 아니고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것 같아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고밝혔다. 점집에서 사주팔자·성명·취업 등의 운세를 봐주는 금액은 2만∼3만원에서 5만원까지 다양하다.물론 사이버상에서 무료상담을 해주는 사이트도 생겼지만 유명세에 따라 역술인들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다.

정치 지망생들의 점괘를 풀어준다는 이모씨(46·족상전문)는 때가 때인 만큼 복채는 ‘부르는 게 값’이라고 자랑한다.역술인이나 무당들의 수입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러나 소득에 대한 세금을 내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피해사례] L보험사에 다니는 윤모씨(45·여·서울)는 둘째 아들의 대학입학 문제로 고민하다 주위의 추천으로 ‘족집게 도사’를 찾았다.도사는 조상신들이 방해하고 있어 아들의 진학운이 막혀 있다며 천도재(薦度齋:죽은 사람 영혼을극락으로 인도하는 것)를 올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씨는 5조상신을 달래지 않고는 집안에 액운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에 800만원을 들여 재를 올렸다.그러나 남편의 사업이 부도나고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남편과 심한 다툼으로가정파탄에 이르게 됐다.아직 아들의 대입시 결과가 남았으나 속은 것만 같다고 하소연했다.

서울 영등포구 이모씨(48·여)는 취업 재수생인 큰아들을위해 점집을 찾았다.

점쟁이는 취직운이 막혀 운기를 높여준다는 부적을 살 것을주문했다.이씨는 200만원을 주고 부적을 사 아들의 베개 속에 집어넣고 취직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아들은 벌써 기업체 시험에 여러 번 떨어졌다.이씨는 “괜한 짓을 한 것 같다”며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유진상기자 jsr@.

■어느 전직 도사님의 고백.지방대학 한문학과를 나온 장모씨(44).서울에서 17년동안통신제품 판매사업을 해오다 지난해 이를 청산하고 뒤늦게목회자의 길을 걷기 위해 신학대학에 입학했다.그는 본업보다는 부업으로 시작한 작명과 사주팔자를 봐주는 점쟁이로이름이 더 알려졌었다.

처음 심심풀이로 시작한 일이 입소문으로 알려지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아예 주업이 바뀌었다.주역풀이에 관심이 많았던 그로서는 대학때 익힌 지식에다 상황에 맞는 그럴듯한입담으로 고객들을 휘어잡았다.

장씨는 “대개 점을 보러오는 사람의 심리는 불안한 상태이기 때문에 역술인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나쁜 운세일수록 곱씹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이런 사람들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혹시나’하는 생각에 ‘액땜하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다시 찾게 된단다.

이럴 경우 조금 무리한 웃돈을 요구하더라도 들어주더라는설명이다.장씨는 역술인들의 말솜씨에 매료되는 순간 무리한 복채를 요구하거나 지속적으로 방문을 요구할때는 의심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10년동안 운세를 봐주는 과정에서 거짓말도 늘고 선량한 사람들을 농락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되뇌었다.지금은 신학대학에 진학,성경공부에 전념하고 있다.

유진상기자.

■점보기 ‘신세대 신풍속.

’취업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만큼이나 어려워지면서 불안해진 20대 사이에도 점보기 문화가 성행하고 있다.

역술인들의 연령층도 20∼30대로 낮아진 데다 공간도 서울강남구 압구정 로데오거리 뒤편이나 신촌·이화여대앞·대학로 등 젊은이들이 즐겨찾는 지역에 세련된 카페 형태로 있다.

특히 닷컴 수난시대에도 인터넷 사이트로 영업하는 점집이100여 곳이 넘을 만큼 성업중이다.복채는 2,000원부터 2만원대로 전문철학관에 비해 저렴한 편이다.

‘7월에는 물가에 가지 말라’는 식의 아리송한 점괘는 지양한다.

‘미국 스탠퍼드대보다 하버드대로 가야 귀국후 교수가 되겠다’ ‘시집은 30세 이후에 가야 이혼당하지 않는다’ ‘올 1월 주식에 투자하면 깨진다’식으로 분명한 지침을 얘기하는게 특징이다.

인터넷 점집 에스크퓨처닷컴(askfuture.com) 소속 역술인 60명중 20∼30대가 40%이며,회원의 75%가 20∼30대다.사주풀이·진로·적성·궁합은 기본이다.증권투자 상담은 물론 내년 경제전망과 국운도 예측한다.영어로도 점괘를 볼 수 있다.고객의 상담내용을 사이트에 모두 공개하고 입금은 통장으로 받는다.

사주닷컴(Sazoo.com)이 지난 4월말부터 5개월간 상담내역을 분석한 결과 △이성문제(32.13%) △진로 및 시험운(16.33%) △사업방향 및 재물운(11.39%) 등으로 문의가 많았다.

이화여대 앞과 신촌역 부근에 자리잡은 100여곳의 역술원과 사주카페는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이대앞 S사주카페에서 카운슬러로 일하는 A모씨는 “취업문제와 연애문제에 대한 문의가 주류를 이룬다”고 밝혔다.최근에는 대학주변 길거리에서 1,000∼2,000원을 받고 손금을 봐주는 IMF형 점집도 인기다.이대 앞에서 손금을 봐주는 B모씨는 “젊은이들이 점집을 찾는 것은 마음의 위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면서“상담시간은 5분을 넘기지 않지만 좋은 얘기를 많이 해줘웃으면서 일어나도록 한다”고 말했다.

주현진기자 jhj@.

■조선시대 무당도 세금냈다.

역술인과 무속인들은 사업자 등록이 거의 안돼 있으며 일부 등록된 사람들도 ‘면세사업자’이다.

아무리 소득이 많아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국세청이나 세무서 관계자들은 유명 점쟁이·무속인들의 수입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이들에게 과세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소득을 밝히지 않아 과세표준을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술인·무속인협회 관계자는 “복채나 굿판에서 내는 돈을 어떻게 일률적으로 정할 수 있겠느냐”면서 “개인간에 거래가 이뤄져 협회 차원에서도 제재를 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말했다.

요즘 직장인들의 ‘연말정산’ 항목 가운데에는 사찰이나교회 등에 낸 헌금이나 성금도 포함돼 세금을 감면받는다.종교단체도 연말 정산용으로 서류를 떼어주는 것이 일반화돼있다.

이 때문에 봉급생활자들은 과세기준이 어려워 세금을 못 거둬들인다는 국세청의 변명을 군색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관련,조선시대에 무속인이 세금을 냈다는 기록은 주목할 만하다.

재정과 군정의 내역을 모아놓은 ‘만기요람(萬機要覽)’이그것이다.

조선은 개국초부터 함경도·강원도·삼남(三南)의 무녀들에게 신을 섬기는 세금으로 무세(巫稅)를 거둬들였다.무녀들을 낱낱이 조사해 장부에 기록하고 사람마다 세목(稅木:무명)이나 오승정포(五升正布:올이 굵은 베나 무명) 1필을 내도록 했다.이때 돈으로 대납하면 3냥5전(영조때 2냥5전)을 내야했다.

민속학자들은 19세기초(순조때) 거둬들인 세금을 근거로 추산할 때 무속인 수가 5,000명이 넘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유진상기자.
2001-12-19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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