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웅 칼럼] 역사와 민족 그리고 사대언론

[김삼웅 칼럼] 역사와 민족 그리고 사대언론

김삼웅 기자 기자
입력 2001-03-20 00:00
수정 2001-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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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서 민족적 일체감이 형성된 시기는 대체로 몽고 침략기인 고려 충렬왕대인 것으로 분석된다. 밖으로는 외 세의 침략이 도리어 안으로 내적(內的)인 민족통합의 정 신적 일체감을 자각하고 형성하게 만들었다. 충렬왕대는 몽고의 속국에서 벗어나고자 관민이 몸부림치 던 시기였다. 일제시대 조선 총독부와 비슷한 원나라 정동 행중성(征東行中省)이 폐지되고 원나라와 같은 관명(官名) 은 모두 고쳤다. 관군은 이미 투항했어도 삼별초가 남해안 과 제주도에서 끝까지 항전하고, 몽고군의 강요지만 함께 일본정벌에 나서기도 했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가 쓰이고 이승휴(李承休)의 ‘제왕운기’도 이때 발간되었다. 고려청자의 전성기를 이루고 대장경판이 완성되어 해인사에 옮겨졌다. 이인로 (李仁老)의 ‘파한집’이 발간된 것도 이무렵이다. 무인정권 100년과 몽고(元)침략으로 국토가 쑥대밭이 된 민족수난기에 민중의 자주의식과 민족주체성이 발양된 것 이다. 조선조 학자 서거정(徐居正)이 ‘삼국사를 읽고’에서 “ 삼한이 나날이 서로 싸우니백만창생이 고통속에 지새웠네 . 신라·백제는 어찌 몰랐던고, 입술이 다치면 이빨이 시 린 것을. 수나라와 당나라가 방울새와 조개 모두를 노리는 어부인데”라고 삼국의 쟁투를 안타까워했지만, 그때는 민족이나 동족의식 같은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한 시대였다. 삼국은 언어와 풍습이 비슷했어도 필요에 따라 서로 ‘주 적’ 또는 ‘우방’관계였을 뿐 동족의식이 싹트기에는 아 직 일렀다. 13세기 후반기에 비로소 민족적 일체감이 형성 된 것이다. 삼한의 동포는 왕조가 바뀌고 시대가 변해도 고난과 영욕 을 함께하며 한반도에 터닦고 살았다. 임진·정유왜란을 겪고 병자·정묘호란을 견디면서,그리고 망국과 식민지시 대를 함께 하면서 이땅을 지켰다. 누가 다시 한반도를 쪼개고 갈랐는가. 분단의 원인은 내 부분열이 독립변수이고 국제환경은 종속변수에 가깝다. 해 방정국에서 온국민이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해야 할때 이 념·지역·정파로 나뉘어 대립하고 결국 외세에 빌미를 주 게된 것은 다 아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반백년을 보내고 모처럼 남북이 화해협력의 계기 를 잡았다. 풀어야 할 사연도 많고 튀어나올 변수도 적지 않다. 그러나 묻을 것은 묻고 삭일것은 삭이면서 반세기만 에 움튼 화해의 새싹을 키워나가야 한다. 이것은 이 시대 를 사는 모든 성원의 사명이고 책임이다. 그런데 분단 55년만에 싹틔운 소중한 씨앗에, 민족화해의 햇볕에 찬물을 끼얹는 자들이 있다. 고난의 민족사에 항 상 매족의 무리가 있었기에 새로운 현상은 아니지만 요즘 의 행태는 해도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심히 우려된다. 솔직히 미국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기조나 그쪽 관리들의 분별없는 언행은 자기네 ‘국익’에 충실하려는 입장으로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상주보다 곡쟁이가 더 섧 게 운다는 격으로 부시정부의 대북 강경발언에 한술 더 떠 서 설레발치고 흥분하여 지면을 도배질하는 이땅 사대(事 大)언론(인)의 행태는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외국 언론이라면 어땠을가. 가령 일본총리가 러시아와 탄 도탄요격미사일(ABM)제한조약과 관련한 공동성명을 발표하 고 미국으로 날아가 부시와 회담을 했다면 일본외교의다 원화는 물론 이를 통한 대미외교의 지렛대로 활용했다고 뒷받침했을까, 아니면 ‘종주국’을 배신했다고 길길이 날 뛰었을까. 부시행정부의 대북강경책은 그들 나름의 이유와 배경이 있다. 전통적으로 군수업자들의 지지를 받는 공화당정부의 ‘군산복합체’노선과 부시의 지지기반 취약성을 한반도 긴장을 통해 해결하려는 정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여전히 우리의 혈맹임에 틀림이 없고 미국 의 존재는 남북화해협력과 통일의 길목에서 든든한 후원자 임도 분명하다. 때문에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공동성명 에서 한국정부의 포용정책을 지지한다고 확인하지 않았던 가. 그런데 왜 이땅의 사대언론들은 포용정책의 지지부분 은 묻어버리고 강경론만 확대해 여론을 오도하고 남북관계 를 악화시키려 드는가. 사대언론(인)이여, 젊은 기자들이여, 민족적 양심으로 돌 아오라! 어렵게 맞은 남북 화해협력의 새싹을 이대로 짓밟 을 순 없지 않은가. 고려 충렬왕시대 이래 함께 해온 민족 적 일체감을 회복해야 하지 않겠는가. [김삼웅 주필 kimsu@]

2001-03-2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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