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광장] 우리는 왜 피로한가

[대한광장] 우리는 왜 피로한가

권오용 기자 기자
입력 2000-10-06 00:00
수정 2000-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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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뚜라미 울음이 들려온다.계절에 민감한 곤충이라 이맘 때면 귀밑에서 우는 듯한 느낌이다.그러나 사실 귀뚜라미는 울지 못한다.성대근육이 없기 때문이다.앞날개를 문지르면 소리가 날뿐인데 우리는 귀뚜라미가 운다고 한다.그래도 생물학자는 우리를 나무라지 않는다.우리가 아는 것이 틀리다고 해도 생물학자가 아닌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생물학자의 아량이 우리를 피로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정치파행이 지속되고 있다.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공전하면서 기업·금융 구조조정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은 물론 시급한 민생 현안까지 내팽개쳐지고 있다.자민련에 교섭단체 지위를 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놓고 시작된 갈등이 국민 경제에 커다란 짐을 지우고 있다.이럴 바에야 차라리 교섭단체라는 제도를 없애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우리를 위해 만든 교섭단체라는 제도가 오히려 우리를 피곤하게하고 있다.

최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한국 증시의 주식회전율이 347%로 세계 최고라고 보도했다.이는 1주당 평균3.5회 가량손이 바뀌었다는 뜻인데 그만큼 단기매매가 잦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그러나 증권거래소 조사에 따르면 올들어 세계 50개 증시 가운데우리 코스닥 지수의 하락률은 61.66%로 세계 1위였다.벌겋게 달아올랐다가 금세 싸늘하게 식어버리는 냄비장세 속에 올 1·4분기 114만원이었던 가구당 여유자금은 41만원으로 73만원이나 줄었다.거래는무수하게 하고도 고스란히 손해를 껴안았으니 주식투자를 후회한들소용없고 피로만 또 쌓인다.

국민건강을 위한 최적의 선택으로 홍보됐던 의약분업으로 환자들만고생이다.이 제도로 생겨나는 이득이 아무리 크다고 하더라도 환자들의 고초에는 비길 수 없다.우리 국민은 납세·국방뿐 아니라 병 나고 다치지 않을 의무까지 지고 태어난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다.초창기의 시행착오로는 부담이 너무나 크다.준비되지 않은 제도의 도입으로 국민들은 새로운 의무를 지게 돼 피곤만 중첩될 뿐이다.

국민의 도움으로 만들어진 오늘날의 한국재벌.그들의 왕성한 기업가 의욕은 우리를 가난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그러나 골육상쟁은 TV속 사극에서 보는 것만으로 족하다.기업경쟁력의 본질을 벗어나는 데까지 왕성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서는 곤란하다.세계는 넓고할 일은 많던 또 다른 기업인의 불명예 퇴장도 우리에게 큰 상처를남겼다.믿었던 한 곳이 무너지는 순간 피로가 또 엄습해 온다.

벤처는 원래 제조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GE의 지난해 매출 1,116억 달러중 절반은 인터넷에서 올린 것이다.그래서 세계 최대의 인터넷 기업은 GE라고 한다.그럼에도 벤처는 첨단이고,전통기업은 굴뚝이라는 이분법으로 시장을 교란하게 만든 일차적 책임은 ‘묻지마 투자’에 있다.‘묻지마 투자’의 결과를 정부의 지원으로 보충하려 하는 한 전 국민 일인당 130만원의 공적자금 조성의 명분은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제도가 개인을 피로하게 하는 만큼 개인도 제도를 피로하게 한다.경찰관이 시위대에 맞는 나라다.보행자 도로는 넘쳐나는 간판과 노점으로 걷기조차 힘들게 돼 있다.버스 전용차선은 불법주차 전용차선이돼 버렸다.주차장이 있지만 돈내는 것이 싫고 아까워노상에서 버젓이 물건을 싣고 내린다.장례식장에서 휴대폰의 닐리리 맘보가 터져나오기도 한다.양보의 표시라는 상향등은 너 조심하라는 협박등으로돼 버렸다.제도가 개인을 피곤하게 하고 개인이 제도를 괴롭히는 악순환을 빚으며 우리는 너무나 피로에 지친 삶을 살게 돼 버렸다.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기업도 개인도 관료도 정치인도 사라져 버린다고 생각해 보자.그리고 고객들이 불편함을 호소하며 사라져버린 것들을 그리워할 수 있을지 검증해 보자.실종검증을 통해 가치를 창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짜보자.전문가는 전문가대로 일반인은 일반의상식으로 살아갈 수 있게 해 줘야 한다.그래야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쌓여만 가는 피로를 씻을 수 있다.귀뚜라미의 울음을 굳이 날개부딪침으로 고쳐가며 살아야 하는 피로를 없앨 수 있다.

◆ 권 오 용 KTB 네트워크 상무
2000-10-06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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