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진 사학자인 이만열 숙명여대교수(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가최근 교양역사서 ‘우리 역사 5천년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냈다(바다출판사).고조선부터 대한제국 말까지의 한국사를 다룬 이 책은 부제가 ‘자주적시각으로 본 우리 민족사’이다.
이교수는 유교사관과 식민주의사관을 벗어나 자주적이고 발전적인 관점에서한국사를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와 관련해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직접거론했다.
이교수를 만나자마자 “우리 사회에서 한국사,특히 고대사를 보는 시각에 편차가 매우 큰데 그 원인이 학계에 있지 않느냐”고 따졌다.
이교수는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면서 강단사학계가 연구성과를 대중에게알리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로 시작했다.용어 자체도 어렵기 마련인 역사학을 쉽게 풀어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그는 “시간과 정열을 바쳐 역사대중화에 앞장서면 이를 학자적인 노력으로인정하기는 커녕 탤런트적 행동으로 치부하는” 학계 풍토를 우려했다.그 결과 연구업적이 연구실에만 머물러 “사회의 역사인식은 중고교 수준을 넘지못했고,역사의식도 전근대적인 단계에 있다”는 게 이교수의 진단이다.
그러나 그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사관(史觀)에 있음을 내비치고 ‘주범’으로 유교사관과 식민주의사관을 지목했다.
유교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어 사대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든데다,그 가치관이 충효를 가장 중요시해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도 충효를 다해야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비판했다.
“인간이 개인적으로 더욱 자유로워지고 사회적으로는 좀더 평등한 관계를수립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이라고 정의하는 이교수는,충효를 기준삼는 사관으로는 민중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근대적 역사 주체의식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식민주의사학에 대한 공박은 더욱 통렬했다.한국사를 자주독립의 역사가 아니라 굴종과 예속의 역사로 왜곡한 것이 식민(주의)사관이라면서 “단지 역사를 보는 관점만이 아니고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까지 규정한다”고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식민주의사관으로 구성된 한국사가 국민에게 좌절과 실의를 안겨주었고,‘민족 냉소주의’에 물들게 했다면서 “잘못된 역사관은 이처럼 폐해가 심각하다”고 개탄했다.
식민주의사관을 극복하고자 이교수가 책에서 거론한 쟁점은 ‘동이족’‘단군’‘위만조선’‘한사군’‘고구려 역사 축소’‘백제의 요서 지배’‘발해의 건국 주체’ 등등이다.
이 가운데 ‘평양에서 발견된 낙랑 봉니’문제는 한사군이 실재했는지,존재했다면 그 위치가 한반도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핵심사항이다.봉니(封泥)란비밀문서를 보낼 때 상자를 진흙으로 봉한 뒤 도장을 찍은 것.평양에서는 낙랑봉니가 많이 출토돼 그동안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증거로 이용돼왔다.
그러나 이교수는 “봉니가 발견된 점은 오히려 평양이 낙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봉니를 허물어 상자를 여는 곳은 보낸 쪽(낙랑)이 아니라 받은 쪽이므로,봉니가 나오는 평양은 낙랑일 수 없다는 이론이다.사실 이 주장은 정인보가 1930년대 이미 내세웠는데 이교수가 새삼 강조하는까닭은 아직도 대부분의 사학자들이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또“임진왜란은 일본이 철저하게 패한 전쟁이므로 우리가 패배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면서 그 근거를 조목조목 들었다.
단재 신채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교수는 “단재의 역사학이 방대한만큼 그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비판적·창조적으로 계승할 대목이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중국과 고대사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단재의 고대사 검증이 현실로 다가서는 느낌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용원기자 ywyi@
이교수는 유교사관과 식민주의사관을 벗어나 자주적이고 발전적인 관점에서한국사를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이와 관련해 쟁점이 되는 부분들을 직접거론했다.
이교수를 만나자마자 “우리 사회에서 한국사,특히 고대사를 보는 시각에 편차가 매우 큰데 그 원인이 학계에 있지 않느냐”고 따졌다.
이교수는 “일정부분 책임이 있다”면서 강단사학계가 연구성과를 대중에게알리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말로 시작했다.용어 자체도 어렵기 마련인 역사학을 쉽게 풀어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그는 “시간과 정열을 바쳐 역사대중화에 앞장서면 이를 학자적인 노력으로인정하기는 커녕 탤런트적 행동으로 치부하는” 학계 풍토를 우려했다.그 결과 연구업적이 연구실에만 머물러 “사회의 역사인식은 중고교 수준을 넘지못했고,역사의식도 전근대적인 단계에 있다”는 게 이교수의 진단이다.
그러나 그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가 사관(史觀)에 있음을 내비치고 ‘주범’으로 유교사관과 식민주의사관을 지목했다.
유교는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갖고 있어 사대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든데다,그 가치관이 충효를 가장 중요시해 어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도 충효를 다해야만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다고 비판했다.
“인간이 개인적으로 더욱 자유로워지고 사회적으로는 좀더 평등한 관계를수립해 나가는 것이야말로 역사 발전”이라고 정의하는 이교수는,충효를 기준삼는 사관으로는 민중이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근대적 역사 주체의식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식민주의사학에 대한 공박은 더욱 통렬했다.한국사를 자주독립의 역사가 아니라 굴종과 예속의 역사로 왜곡한 것이 식민(주의)사관이라면서 “단지 역사를 보는 관점만이 아니고 일상적인 생각과 행동까지 규정한다”고 했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식민주의사관으로 구성된 한국사가 국민에게 좌절과 실의를 안겨주었고,‘민족 냉소주의’에 물들게 했다면서 “잘못된 역사관은 이처럼 폐해가 심각하다”고 개탄했다.
식민주의사관을 극복하고자 이교수가 책에서 거론한 쟁점은 ‘동이족’‘단군’‘위만조선’‘한사군’‘고구려 역사 축소’‘백제의 요서 지배’‘발해의 건국 주체’ 등등이다.
이 가운데 ‘평양에서 발견된 낙랑 봉니’문제는 한사군이 실재했는지,존재했다면 그 위치가 한반도인지 아닌지를 밝히는 핵심사항이다.봉니(封泥)란비밀문서를 보낼 때 상자를 진흙으로 봉한 뒤 도장을 찍은 것.평양에서는 낙랑봉니가 많이 출토돼 그동안 ‘낙랑군이 평양에 있었다’는 증거로 이용돼왔다.
그러나 이교수는 “봉니가 발견된 점은 오히려 평양이 낙랑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한다”고 강조했다.봉니를 허물어 상자를 여는 곳은 보낸 쪽(낙랑)이 아니라 받은 쪽이므로,봉니가 나오는 평양은 낙랑일 수 없다는 이론이다.사실 이 주장은 정인보가 1930년대 이미 내세웠는데 이교수가 새삼 강조하는까닭은 아직도 대부분의 사학자들이 이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이교수는 또“임진왜란은 일본이 철저하게 패한 전쟁이므로 우리가 패배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다”면서 그 근거를 조목조목 들었다.
단재 신채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교수는 “단재의 역사학이 방대한만큼 그 주장을 모두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비판적·창조적으로 계승할 대목이많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중국과 고대사 교류가 가능해지면서 단재의 고대사 검증이 현실로 다가서는 느낌을 받는다”고 밝혔다.
이용원기자 ywyi@
2000-06-0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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