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0일 오후 2시 북한 남포항.5,000t의 비료를 싣고 여수를 떠나 50시간의 항해 끝에 도착한 ‘북한 땅’은 의외로 포근했다.마중 나온 세 명의북측 적십자 인도요원들의 태도도 예전과 달랐다.하역을 위해 항구에 나온 200여명의 일꾼들도 밝은 얼굴이었다.
남측 적십자요원들은 항구에서 800m 떨어진 숙소 ‘선원구락부’까지 벤츠등 외제차로 이동하고 2층의 특별 연회장에서 영덕게와 비슷한 동해산 게와온갖 진귀한 산나물로 식사를 하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술 한잔 기울이고어깨동무하며 노래도 부르면서 남북이 한 동포,한 형제임을 확인한 자리였다.이튿날 오전에는 ‘봄날의 눈석이(눈 녹음의 북한식 표현)’이란 영화를 함께 보며 한민족으로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더욱 두터워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상회담 합의 발표 후 처음으로 북한에 비료를 전달하고 돌아온 대한적십자사 강대만(姜大萬·56)감사실장은 “회담 합의 후 북의 태도가 이처럼 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면서 “헤어질 때에는 하루빨리 통일을 앞당겨 다시 만나자고몇차례나 다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강 실장은 “과거에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북측이 지난번에는 ‘비료를 줘서 농사에 큰 보탬이 됐다.아주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던지는 등 최고의 친절로 대했다”고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곽정수(郭正洙·51)전산팀장 역시 지난달 22일 비료 6,000t을 싣고 울산을 떠나 해주항으로 들어갔다.이틀간의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북쪽의 환대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고 한다.곽 팀장은 “남북의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피부로 느꼈다”면서 “통일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북 적십자요원들은 마치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탁구를 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고 한다.특히 “남에서는 폭탄주를 마신다고 들었다”는 북측 적십자 요원의 말에 북한 들쭉술에 맥주를 섞어 마시며 밤 깊도록 회포를 풀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맞이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로 바뀌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남이 북에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한 것은 97년.지금까지 80여차례 970억여원 어치의 물품을 적십자사를 통해 북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동안 쌀이나 비료 같은 물자를 지원하면서도 그다지 북의 신뢰를얻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동포애와 인도주의 차원보다는 여러 조건들을 내세우며 ‘북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등 지나치게 ‘상호주의’를 내세웠기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 들어 98년부터 기계적 상호주의를 배격하고 동포애와인도주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마침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문제만큼이라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미 너무도 많은세월이 흘렀는데 또다시 상호주의를 앞세워서는 일을 그르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북녘동포돕기 대표 李海學목사.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지나친 기대를 갖는것은 금물입니다”.
‘겨레사랑 북녘동포돕기범국민운동본부’ 대표인 이해학(李海學·55)목사는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역사”라면서 “국민들이 가시적인 성과만을 요구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화해·협력 분위기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97년 결성된 북녘동포돕기 운동본부는 그동안 30여억원을 거둬 옥수수와 비료를 북에 지원해 왔다.요즘엔 씨감자 보급,농업기술 지원 등 북의 영농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목사는 “같은 민족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 도와주는 일인 만큼 ‘나는이만큼 줬는데 왜 너는 그것밖에 주지 않느냐’고 따져서는 될 일도 안된다”고 상호주의에 대한 경계를 당부했다.그는 정상회담이 끝나면 실무 차원에서 비료·식량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장기수 송환 등 현안을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이 목사는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구축”이라면서 “과거남북이 회담하며 팀스피리트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거나 공작원을 내려보내는 등 서로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진짜 신뢰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남북 통일을 ‘신문지 합봉법(合蜂法)’에 비유했다.겨울에는 벌집을 합쳐야 하는데 이때 그냥 함께 넣으면 다른 냄새를 가진 벌들이 싸우다 서로의 침에 찔려 결국 모두 죽는다.그러나 양쪽 벌집에 구멍을 뚫어 신문지를 대놓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져 신문지를 치워도 사이좋게 한곳에서 산다고 한다.
이처럼 남북 통일도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당분간 두 개의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하나의 국가 형태로 통일을 먼저 한 뒤 나중에 ‘서로의냄새에 익숙해지는’ 진정한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는 게 이 목사의 지론이다.
박록삼기자.
남측 적십자요원들은 항구에서 800m 떨어진 숙소 ‘선원구락부’까지 벤츠등 외제차로 이동하고 2층의 특별 연회장에서 영덕게와 비슷한 동해산 게와온갖 진귀한 산나물로 식사를 하는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술 한잔 기울이고어깨동무하며 노래도 부르면서 남북이 한 동포,한 형제임을 확인한 자리였다.이튿날 오전에는 ‘봄날의 눈석이(눈 녹음의 북한식 표현)’이란 영화를 함께 보며 한민족으로서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더욱 두터워지는 계기를 만들었다.
정상회담 합의 발표 후 처음으로 북한에 비료를 전달하고 돌아온 대한적십자사 강대만(姜大萬·56)감사실장은 “회담 합의 후 북의 태도가 이처럼 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면서 “헤어질 때에는 하루빨리 통일을 앞당겨 다시 만나자고몇차례나 다짐하며 아쉬움을 달랬다”고 말했다.강 실장은 “과거에는 사사건건 트집을 잡던 북측이 지난번에는 ‘비료를 줘서 농사에 큰 보탬이 됐다.아주 고맙다’는 감사의 말을 던지는 등 최고의 친절로 대했다”고 덧붙였다.
대한적십자사 곽정수(郭正洙·51)전산팀장 역시 지난달 22일 비료 6,000t을 싣고 울산을 떠나 해주항으로 들어갔다.이틀간의 짧은 시간 동안 이어진 북쪽의 환대에 어안이 벙벙할 정도였다고 한다.곽 팀장은 “남북의 이질감보다는 동질감을 피부로 느꼈다”면서 “통일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았다”고 말했다.
남북 적십자요원들은 마치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탁구를 치며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다고 한다.특히 “남에서는 폭탄주를 마신다고 들었다”는 북측 적십자 요원의 말에 북한 들쭉술에 맥주를 섞어 마시며 밤 깊도록 회포를 풀었다.
최근 북한을 다녀온 사람들은 ‘북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마음을 열고 맞이했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로 바뀌기 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남이 북에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한 것은 97년.지금까지 80여차례 970억여원 어치의 물품을 적십자사를 통해 북으로 보냈다.
그러나 그동안 쌀이나 비료 같은 물자를 지원하면서도 그다지 북의 신뢰를얻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동포애와 인도주의 차원보다는 여러 조건들을 내세우며 ‘북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등 지나치게 ‘상호주의’를 내세웠기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 들어 98년부터 기계적 상호주의를 배격하고 동포애와인도주의를 중심에 놓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마침내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합의되면서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대한적십자사 박기륜(朴基崙)사무총장은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문제만큼이라도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이미 너무도 많은세월이 흘렀는데 또다시 상호주의를 앞세워서는 일을 그르친다”고 강조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
*북녘동포돕기 대표 李海學목사.
“첫 술에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이번 남북 정상회담에 지나친 기대를 갖는것은 금물입니다”.
‘겨레사랑 북녘동포돕기범국민운동본부’ 대표인 이해학(李海學·55)목사는 “남북 정상회담은 그 자체가 역사”라면서 “국민들이 가시적인 성과만을 요구한다면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고 화해·협력 분위기 유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97년 결성된 북녘동포돕기 운동본부는 그동안 30여억원을 거둬 옥수수와 비료를 북에 지원해 왔다.요즘엔 씨감자 보급,농업기술 지원 등 북의 영농 지원에 힘을 쏟고 있다.
이 목사는 “같은 민족이 어려운 지경에 빠져 도와주는 일인 만큼 ‘나는이만큼 줬는데 왜 너는 그것밖에 주지 않느냐’고 따져서는 될 일도 안된다”고 상호주의에 대한 경계를 당부했다.그는 정상회담이 끝나면 실무 차원에서 비료·식량 지원과 이산가족 상봉,장기수 송환 등 현안을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한다는 충고도 덧붙였다.
이 목사는 “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구축”이라면서 “과거남북이 회담하며 팀스피리트 같은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거나 공작원을 내려보내는 등 서로에 대해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드는 일이 많았다”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진짜 신뢰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 목사는 남북 통일을 ‘신문지 합봉법(合蜂法)’에 비유했다.겨울에는 벌집을 합쳐야 하는데 이때 그냥 함께 넣으면 다른 냄새를 가진 벌들이 싸우다 서로의 침에 찔려 결국 모두 죽는다.그러나 양쪽 벌집에 구멍을 뚫어 신문지를 대놓고 일정시간이 지나면 서로의 냄새에 익숙해져 신문지를 치워도 사이좋게 한곳에서 산다고 한다.
이처럼 남북 통일도 서로를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도록 당분간 두 개의 체제를 인정한 상태에서 하나의 국가 형태로 통일을 먼저 한 뒤 나중에 ‘서로의냄새에 익숙해지는’ 진정한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옳다는 게 이 목사의 지론이다.
박록삼기자.
2000-06-0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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