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체비평] 권위주의 신문과 권위지

[매체비평] 권위주의 신문과 권위지

김창룡 기자 기자
입력 2000-04-26 00:00
수정 2000-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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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권위주의 신문은 있어도 권위지는 없다” 지난 한 주 중앙 일간지들의 지면구성을 살펴보면 이런 비판을 부인하기 힘들 것 같다.지난주 한국언론의 최대 관심사는 ‘블랙 먼데이’라고 하는 주가 폭락사태였다. 미국증시의 사상 최대 폭락사태에 영향을 받아 국내 종합주가지수 역시 최대 규모의 하락률을 기록했다는 내용이다.그러나 이 내용을다루는 국내언론의 제작행태는 한마디로 저급한 대중지의 수준을 넘지 못했다.권위지를 자처하는 한 신문은 톱기사로 ‘국내 증시 붕괴우려’라고 까지‘과장된’ 제목을 달았다. 이런 제목을 비웃기라도 하듯 단 하루만인 4월 19일 주가는 39포인트나 반등해 버렸다.

이런 제목보다 문제는 관련기사의 양적인 불균형에서 비롯된다.이날 주식과관련된 기사는 중앙일간지 대부분 1면을 포함해서 10여개 면에 걸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권위지를 자처하는 신문들이 주식관련 기사로 지면을 도배하다시피 했다.경제지도 아닌 종합일간지로서 주식투자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대한 배려는 없었다.주식 투자인구가 늘어나주식동향이 대중의 주요한 관심사이긴 하지만 해도 너무 한 것이다.마치 영국의 대중지들이 고인이 된 다이애너와 그 애인의 전화통화를 도청한 뒤 2∼3페이지 전면에 걸쳐 공개하는,흥미위주의 제작방식을 연상케하는 일이었다.

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질적으로 과연 이런 기사들이 정보적 가치가 있는것이냐는 점이다.전체적으로 피상적 수준을 넘지 못했다.‘떨어질만큼 떨어졌다’,‘거래소 코스닥서 하루새 40조 날아가’,‘숨가빴던 증시 하루’,‘은행주만 뜨나’,‘향후 주가 긴급진단’,‘망연자실 객장스케치’ 등.주식과 관련한 언론보도는 이런 수박겉젓챰蒐? 외에도 그 신뢰성에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신문사들이 증권회사가 추천하는 주식투자 유망종목이란 것을 별 검증도 없이 게재하고 있어 초보투자가들에게 막대한 손실을 입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신문사들은 그 책임을 증권회사의 ‘무지나 비윤리성’으로 돌리겠지만투자자들은 언론이 갖는 ‘권위와 믿음’때문에 이것을 보고 투자하는 경우도 많다.

한 조사자료에 따르면,지난달코스닥시장이 강세를 보였는데도 증권사들의추천종목 평균 수익률이 0.3%에 불과했다는 것이다.또 전체 16개 증권사 가운데 9개 증권사가 추천한 추천종목이 이익보다는 손실을 입힌 것으로 나타났다.판단은 독자들이 한다는 미명하에 증권사들의 믿을 수 없는 추천종목을함부로 게재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권위지의 생명은 신뢰성과 정확성에 있다.이 때문에 영국의 ‘더 타임즈’는 40만부 정도 팔리지만 400만부 팔리는 대중지 ‘더 선’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권위지? 대중지처럼 기사의 양으로 승부하려고 하지 않는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었다.언론은 이날 하루만 장애인의 날 특집으로지면을 꾸렸다.한국만큼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장애시설이 미비한 곳도 드물지만 이에 관한 보도는 평소 별 관심을 끌지 못한다.한정된 지면에 온통 주식관련 기사로 채울 때 상대적으로 이런 주제는 설 곳이 없게 된다.

권위지를 자처하는 신문들.부수자랑이나 하며 가판대에 담합이라도 하듯 똑같이 400원씩에 판매하는 대중지들.왜 우리신문계에는 정확도와 신뢰성 차원에서 ‘한 부에 1,000원씩 받겠다’고 나서는 권위지가 없는가.

김창룡 인제대교수 언론정치학부
2000-04-26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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