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선언] 우리는 까마귀가 아니다

[여성 선언] 우리는 까마귀가 아니다

김성옥 기자 기자
입력 2000-03-02 00:00
수정 2000-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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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국민들은 스스로를 자유롭다고 믿지만 그것은 착각이다.국민은 오직의회의 의원을 뽑는 선거 기간에만 자유로울 뿐이며 의원이 선출되는 순간그들은 노예로 전락한다’.1762년 국민주권론을 주장했던 루소가 의회제도의맹점을 비판하면서 했던 이 말은 선거와 관련하여 우리 국민들이 그동안 느껴왔던 심정을 대변해준 듯하다.

총선을 맞이해 또다시 신당이 급조됐다.허연 눈썹의 ‘산신령’이 다시 등장하고 대통령만을 태운다는 ‘빈배’도 항해를 한단다.이런 와중에 ‘칼국수거사’의 문 앞이 이런저런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이들은 가슴 속에 권력‘욕(慾)’자 세 개를 새기고 있어 필요하다면 누구에게나 머리 숙여 삼고초려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런 움직임들을 보고 있자니 한 달여 전 온국민의 관심과 열정을 불러일으켰던 시민의 낙천운동의 감동이 슬그머니 지역 감정으로 대치되는 게 아닌가싶은 우려가 생긴다. 아무래도 이들 행동은 지역 감정만 잘 부추기면 얼마든지 득표력이 있다고 하는 믿음에 기반을 두고 있는 듯하다.

신당이 내세우는명분은 ‘반 이회창·반 DJ’뿐이다.시민단체의 낙천자명단에 오른 사람들,그리고 자신들의 당에서 낙천한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는신당이 정치권에서 뜨거운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겉으로는 차마 내세우지 못하지만 이들이 득표력을 자신하는 근거는,‘너도 알고 나도아는 비밀의 병기,지역 감정에의 호소’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지역 감정이얼마나 특효약인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을 몰아낸 정당들조차 신당을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시민의 권리의식을 ‘고향 까마귀’에 대한 맹목적인애정으로 바꿔치는 정치권의 기술이 9단이라는 것은 우리 국민이 공인하는사실이다.

과거 지역 감정이 만들어낸 것들 중 하나는 선거철 부부싸움이다.이 싸움의쟁점은 묘하게도 어느 당의 누구를 찍을 것인가라는 문제를 비껴가 꼭 상대방 고향 사람들의 인간성으로 귀결된다.“당신네 △△지역 사람들은 인간성에 문제가 있어”,“흥,당신네 ××지역 사람들은 그렇게 해먹고도 부족해여차하면 쿠데타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뭘?”.이런 비난들이 사랑하는 배우자사이에서 거침없이 오간다. 여기에다“◇◇지역 사람들은 뭐 핫바지냐”는부추김도 가세한다.이런 싸움들은 집안의 부부싸움에서부터 집 밖의 모르는사람들 사이에서까지 종종 드잡이나 폭력으로 발전했다.하지만 선거가 끝나면 싸웠던 우리들은 다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부끄러워했다.감정적인 민족,비전 없는 민족이라고 스스로를 자조하고 비하했다.정치 불신을야기시킨 의원님들은 바로 우리 손으로 뽑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욕하고 비난하면서도 다음 선거때는 또 되풀이했으니 이런 반복운동은 풀릴것 같지 않은 악순환의 고리로만 보였다.

그런데 바로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계기가 시민단체의 낙천운동이라는 이름으로 태동했다.이 운동은 우리에게 시민의 권리 의식을 일깨우면서 2000년도의 벽두를 희망과 자부심으로 채웠다.그러나 이러한 시민운동의 감동이 우리의 의식 속에 뿌리내리기도 전에 퇴출당한 기득권 세력이 부추기는 지역 감정이 다시 우리를 마비시킬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급조된 신당을 경계해야 하리라 본다.

새로운 21세기,2000년도를 우리는 시민의 정치 참여운동으로 시작했다.그것은 우리에게도“시민은 있다”라는 믿음과 우리 모두가 시민으로서 뭔가 해낼 수 있다는 의식과 긍지를 불러일으켰다.낙천자명단이 발표되기를 기다리면서 느꼈던 기대와 열기를 선거일까지 잊지 말자.까마귀는 잘 잊는 동물을상징한다.고향 까마귀에 호소하는 정치인은 우리가 주권을 가진 시민이기를잊어버리기를 바라는 사람이다.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결코 까마귀가 아님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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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옥 장안대 교수 철학
2000-03-02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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