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병역비리 척결 빠를수록 좋다

[기고] 병역비리 척결 빠를수록 좋다

정영휘 기자 기자
입력 2000-03-01 00:00
수정 2000-03-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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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새해 첫날,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화두는 병역에 관한 것이었다.우리 근대사에서 요즘처럼 군 복무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 적은 없었다는 얘기들이다.남자는 이제 ‘국방의무’를 마치지 않으면 어디가서도 발붙이지 못할거라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팽배해 있다.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군대를 가고 안 가는 걸 두고 ‘어둠의 자식’이니,‘신의 아들’이니,또는 ‘유전면제,무전입대’란 해괴한 자조어가 나돌던 시절에 비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이렇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지난번 대선에서 ‘대쪽’ 이미지로 참신성을 내세우던 대통령 후보의 집안이 온통 병역미필로 밝혀져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받은데 이어,수많은 지도층 인사들이 병역미필자이고,그들의 자녀들이 병무 부정과 연루돼 매스컴의 도마 위에 오르면서 국민을 분노케 한데서 비롯된 것이다.

군대 생활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적어도 직업군인을 제외하고선 말이다.자유분방한 젊은 날을 24시간 영내에서 통제된 생활을 한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다.먹는 것,입는 것,잠자는 것등 기본적인 생활에서부터 엄한 조직의 계획된 스케줄에 따라 명령과 복종의 상하관계 속에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집단.한달에 1만원,2만원의 봉급을 받고도 영하의 설원을 달리며 호된 훈련을 받고,밤잠을 설치면서 전선을 지켜야 하는 고달프고 무거운 책임.뭍에서,바다에서,공중에서 조국을 보위하는 사명을 다하는데 한눈을 팔 짬이없다.그런 날이 910일간이나 쉼없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영국에서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 대학 출신이 주를 이루는 귀족이나 상류층은 전쟁이 나면 먼저 전장으로 달려간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지’,그리고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형 존 F.케네디1세가 공군조종사로 최전방에 나가 싸우다 전사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미8군사령관 밴플리트 장군은 외아들을 한국전쟁에서 잃었으며,모택동의 아들도 중공군으로 참전해 사망한 사례는 널리 알려진 일이다.

우리에게 병역문제는 여러 갈래의 자취를 남겼다.고구려의 상무정신은 북방대륙을 우리 손아귀에 들게 했으며,신라 화랑도의 군사력은 3국을 하나 되게 하였다.그런가하면,조선조의 무반천시 풍조와 국방홀시정책,병역제도의 모순·비리는 나라를 망국의 길로 내몰았다.사대부나 양반의 자식들은 제외하면서 강아지와 절구까지 군적에 올려 군포를 받아내는 관리들의 가렴주구를견디지 못한 양민들은 토호들의 종이 되거나 중으로 신분을 바꾸어 군역을면했던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그러나 ‘호국의 얼’이 숨쉬는 자랑스런 일화도 있다.백제와 싸움에서 16세의 아들을 최후의 격전장인 황산벌에 내보내 전세를 역전시킨 신라 화랑관창의 아버지 품일장군이 있었는가 하면,임진왜란때 자식과 함께 목숨을 걸고 왜적을 물리친 고경명 같은 명장이 있다.낮은 시력으로 군 면제 판정을받았음에도 입영해 훈련을 마친 현역장군의 아들 얘기는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정보화시대에 시민을 분류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는,‘병역을 마쳤는가’가 될 것이라 한다.특히 지도층이 되려는 사람,선거로 입신하고자 하는 젊은이들에게는 2년반의 세월이 결코 헛된 시간낭비가 아님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헌법이 정한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수행하는 일이 건전한 시민,애국하는 국민의 기본요건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하물며 병역비리의 척결에 있어서는 어떠한 구실도 용납되어서는 안된다.선거철이라 피하고 정치적 탄압이라는 공세에 밀린다면 이 고질병은 어느 세월에 바로잡힐 것인가.

군입대 희망자가 몰려 입영원을 6개월 전에 내야 하고,입영이 선착순이 아니라 성적순이라는 말이 들리는 이즈음의 사회 분위기가 일과성이 아닌 건전한 병역문화로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그런 뜻에서 병역비리 척결은 엄정하고 빠를수록 좋다.

정영휘 수필가·예비역 육군준장
2000-03-01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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