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오해부른 李재경의 은유법

[오늘의 눈] 오해부른 李재경의 은유법

박선화 기자 기자
입력 2000-01-17 00:00
수정 2000-0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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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李憲宰) 재정경제부장관은 평소 직접화법과 간접화법을 번갈아 사용한다.직접화법은 주로 재벌 구조조정 등 개혁적인 사안을 강조할 때 사용한다.반면 민감한 사안을 놓고 얘기할 때는 선문답(禪問答)식의 은유법 대화를 자주 쓰는 편이다.

그런 이 장관이 지난 14일 금융감독위원장직을 떠나면서 이임사에서 인용한 서산대사의 선시(禪詩)가 금융계의 화제다.‘踏雪野中去(눈덮인 들길을 걸어갈 제) 不須胡亂行(행여 이리저리 함부로 걷지말라) 今日我行跡(오늘 남긴 내 발자국이) 遂作後人程(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되리니)’- 이 선시는 백범 김구선생이 지난 48년4월19일 분단으로 치닫는 우리나라를하나로 묶기위해 38선을 넘으면서 읊기도 했다.이 장관이 기업·금융구조조정 과정을 회고하면서 마치 백범 선생과 마찬가지로 선각자의 심정을 대변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 많다.그런 의미에서 재경장관에 취임하기 전날 그가전경련 위상을 언급하면서 ‘해체’ 등 자칫 오해할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한 것은 야구로 말하면 에러를 낳은 것처럼 보인다.그러나 한꺼풀만 뒤집어보면 이 장관의 발언이 상당 부분 곡해돼 있음을 발견한다.이임을 앞두고 출입기자들과 자유로운 사담을 하는 자리였고,전체 취지를 생각하지 않은 일부 언론의 거두절미한 보도로 당초 농담처럼 한 발언이 진실처럼 보도됐다는 점이다.머리좋기로 소문난 이 장관은 평소에도 농담을 많이 한다.농담성 발언을 농담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발언할 때마다 설화(舌禍)를 입을 수밖에 없다.

이 장관은 금감위에서 이임사를 하면서 뜻밖에 눈물을 흘린 사람이다.지난2년간 ‘저승사자’로 불리면서 냉정하게 구조조정을 밀어붙였던 그가 흘린눈물을 가식의 ‘악어의 눈물’로 보는 사람은 적어도 주위에서는 없다.고교 선배에다가,자신이 낭인시절 신세를 졌던 김우중(金宇中)회장의 대우를 몰락케 한 사람도 이 장관이다.그만큼 자기자신에 철저한 인물이다.

그러나 이 장관이 민감한 사안을 언급하면서 좀 더 신중했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그가 이임식에서 행했다는 ‘눈덮인 들길을 걸어갈 제,이리저리 아무렇게나 함부로 걷지 말라…”는 말의 의미가 더욱 함초롬히 피어난다.

박선화 경제과학팀 차장 psh@

2000-01-17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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