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전기料 때문에 아들 잃을뻔…”

[현장]“전기料 때문에 아들 잃을뻔…”

장택동 기자 기자
입력 1999-11-06 00:00
수정 1999-11-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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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 6만여원을 못 내 살림살이를 다 태우고 아이들 생명까지 잃을뻔하다니….”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 있는 동생 집에 몸져 누운 양모(31·여·성북구 장위1동)씨는 아직도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지난 3일 새벽 2시쯤 호프집에서 일을 마치고 기진맥진해 집으로 돌아온 양씨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었다.세들어 살던 방은 불에 타버렸고,큰 아들 최모(10)군과 막내(8)는 신발도 못 신고 내복만 입은 채 집 앞에서 떨며울고 있었다.

단란했던 양씨 가정에 불행이 닥친 것은 지난해 9월.남편(36)이 운영하던청바지 공장이 부도가 났다.남편은 빚쟁이들에게 쫓겨 도망다니다 결국 지난6월 구속됐다.

양씨는 남편이 없는 가운데 두 아들과 먹고 살기 위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그러나 생활을 꾸리는 것은 버겁기만 했다.지난 1월부터는 도시가스가 끊겨 겨우내 냉방에서 지냈다.아이들이 추위를 참지 못하면 헤어드라이기로 이불을 덥혔다.전화도 끊겼다.

한국전력은 양씨가 지난 8월부터 전기요금을 못내자 지난달 보낸 통지서에서 단전을 예고했다.지난 1일에는 단전 예고 스티커를 대문에 붙였다.하지만 양씨는 밤늦게 들어오느라 보지 못했다.전기는 지난 2일 끊겼다.

최군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 밤이 무서웠다.동생을 먼저 재우고 엄마를 기다리다 옆 집에서 양초를 빌려 촛불을 켜놓고 깜박 눈을 붙였다.최군이 잠결에 뜨거운 기운을 느끼고 눈을 떴을 때는 화장대에 세워놓은 양초가 넘어져 침대로 불이 옮아 붙고 있었다.최군은 동생을 안고 정신없이 밖으로 뛰쳐 나왔다.

양씨는 “전기요금 6만7,000원을 내지 않았다고 아이들만 있는 집에 전기를 끊어 버리는 것은 너무 매정하다”면서 “남편이 나올 때까지 버텨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음을 터뜨렸다.이웃들도 “IMF 사태로부도를 낸 중소기업 사장을 잡아 넣어 집안을 완전히 망가뜨렸다”며 혀를찼다.

사회팀 장택동 taecks@
1999-11-06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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