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7시.서울 관악구 신림동 서울대 정문 앞에 6대의 버스가 멈추자검은 상복을 입은 300여명의 사람들이 내렸다.지난 18일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실험실 폭발사고로 숨진 고 김태영(29)·김영환(金永煥·25)·홍영걸(洪永傑·23)씨의 장례 행렬이었다.
행렬은 영정을 앞세우고 빗속을 뚫고 공과대로 향했다.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학교측이 정문 통과를 허락하지 않아 학교 밖에서 기다렸다.
“널 보내기 싫다고 수십번도 더 말하고 싶지만,이제는 너를 보낼 시간이구나.이젠 아픔 없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모두 하면서 편히 잠들렴…” 사고가 난 공학관 31-1동 가건물 앞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학생대표 최윤호씨(석사과정 1년)가 추도시를 읽자 식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숨진 ‘과학도’들의 어머니들은 아들의 영정을 보며 통곡했다.애써 울음을참던 아버지들도 끝내 굵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어미만 남겨두고 갔단 말이냐” 땅을 치며 오열하던 가족들은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소복차림 여학생의 살풀이 춤에 더욱슬픔이 북받치는 듯해 보였다.추도식에 참여한 교수와 동료,선후배들도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다.
추도식이 끝나자 행렬은 다시 정문 밖의 운구차로 향했다.고 김영환씨의 어머니는 추도식에 앞서 이날 오전 6시부터 빈소인 서울대 부속병원에서 열린합동 영결식에서 두 번이나 실신한 뒤끝이라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러나 오열 속에 치러진 추도식장에는 이기준(李基俊)총장과 송병락(宋丙洛)부총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서울대 병원에서의 영결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자핵공학과 대학원생 명의로 돌린 영결식 안내 유인물의 식순에는 이총장이 추도사를 하게 돼 있었다.또 이총장과 송부총장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명시돼 있었다.영결식에서 총장 명의의 추도사는 우종천(禹鍾天)대학원장이대신 읽었다.
“미래의 에너지를 개발하겠다”며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렸던 김태영씨,국제학술지에만 9편의 논문을 발표한 김영환씨,어머니가 한림대 청소원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과학도의 길을 걷고자 했던 홍영걸씨.
사고가 난 대학의 최고 책임자인 총장과 그를 보좌하는 부총장이 참석하지않은 영결식과 추도식을 보며 기자는 왠지 더욱 서글퍼졌다.
[사회팀 전영우기자 ywchun@]
행렬은 영정을 앞세우고 빗속을 뚫고 공과대로 향했다.시신을 실은 운구차는 학교측이 정문 통과를 허락하지 않아 학교 밖에서 기다렸다.
“널 보내기 싫다고 수십번도 더 말하고 싶지만,이제는 너를 보낼 시간이구나.이젠 아픔 없는 세상에서 하고 싶은 것 모두 하면서 편히 잠들렴…” 사고가 난 공학관 31-1동 가건물 앞에서 열린 추도식에서 학생대표 최윤호씨(석사과정 1년)가 추도시를 읽자 식장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숨진 ‘과학도’들의 어머니들은 아들의 영정을 보며 통곡했다.애써 울음을참던 아버지들도 끝내 굵은 눈물을 뚝뚝 떨궜다.
“너 없이 어떻게 살라고 어미만 남겨두고 갔단 말이냐” 땅을 치며 오열하던 가족들은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소복차림 여학생의 살풀이 춤에 더욱슬픔이 북받치는 듯해 보였다.추도식에 참여한 교수와 동료,선후배들도 고개를 숙인 채 울먹였다.
추도식이 끝나자 행렬은 다시 정문 밖의 운구차로 향했다.고 김영환씨의 어머니는 추도식에 앞서 이날 오전 6시부터 빈소인 서울대 부속병원에서 열린합동 영결식에서 두 번이나 실신한 뒤끝이라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그러나 오열 속에 치러진 추도식장에는 이기준(李基俊)총장과 송병락(宋丙洛)부총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서울대 병원에서의 영결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자핵공학과 대학원생 명의로 돌린 영결식 안내 유인물의 식순에는 이총장이 추도사를 하게 돼 있었다.또 이총장과 송부총장은 장례위원회 고문으로명시돼 있었다.영결식에서 총장 명의의 추도사는 우종천(禹鍾天)대학원장이대신 읽었다.
“미래의 에너지를 개발하겠다”며 밤낮으로 연구에 매달렸던 김태영씨,국제학술지에만 9편의 논문을 발표한 김영환씨,어머니가 한림대 청소원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과학도의 길을 걷고자 했던 홍영걸씨.
사고가 난 대학의 최고 책임자인 총장과 그를 보좌하는 부총장이 참석하지않은 영결식과 추도식을 보며 기자는 왠지 더욱 서글퍼졌다.
[사회팀 전영우기자 ywchun@]
1999-09-22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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