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경제부 김우찬(金佑燦·32·사진)사무관은 ‘고위 외교관’ 가족을 이루고 있다.부친은 김석규(金奭圭) 주일대사이고 장인은 정주년(鄭炷年) 전대사(현 관동대 교수).외교가에서 흔치 않은 외교관 집안의 혼맥형성은 김사무관 부인과 대학(연세대 경영학과) 동창인 누이동생의 소개로 이뤄졌다.
김사무관이 부친을 따라 외교관의 길을 걷지 않고 행정관료의 길을 택한 것은 전공탓이 크다.대학(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해 자연스레 행정고시를 택했다는 것이다.
김사무관의 성장과정도 작용했다.멕시코에서 태어난 김사무관은 스페인·뉴욕·워싱턴 등에서 살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이후에는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다.한국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김대사의 뜻에 따라서다.
누나와 누이동생은 부모와 함께 생활했지만 김사무관은 부모와 떨어져 서울의 외가집에서 자랐고,어릴 때는 김포공항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이런 까닭에 그는 다른 외교관 자녀처럼 특례입학을 하지 않고 ‘실력’으로대학에 들어갔다.
친구들은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느냐”고 말리기도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던 9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의 길에 들어섰을때 가족들은 모두 반가워했다.부친과 장인이 고위외교관이어서 공직을 화제로많은 대화를 나눌법 한데도 일이나 공직사회를 입에 올리는 적은 거의 없다.
주로 집안 일을 얘기한다.
김사무관의 공직관은 특이하다.‘한번 공무원이라고 영원한 공무원은 아니다’는 생각이다.공무원 스스로가 민간에 비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과 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료생활을 시작한지 3년만인 94년 훌쩍 유학을 떠난 것도 실력을 쌓기 위해서다.그는 5년만에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정책학(금융정책학) 박사학위를받고 지난달 귀국해 국제금융국 외화자금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사무관은 ‘김석규대사의 외동아들’이라는 주변의 인식으로 손해를 입기보다는 득을 입는 일이 적지 않다고 솔직히 말한다.윗사람을 만나도 대부분따뜻하게 대해준다는 것이다.
박정현기자 jhpark@
김사무관이 부친을 따라 외교관의 길을 걷지 않고 행정관료의 길을 택한 것은 전공탓이 크다.대학(서울대)에서 국제경제학을 전공해 자연스레 행정고시를 택했다는 것이다.
김사무관의 성장과정도 작용했다.멕시코에서 태어난 김사무관은 스페인·뉴욕·워싱턴 등에서 살았지만 초등학교 5학년 이후에는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다.한국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김대사의 뜻에 따라서다.
누나와 누이동생은 부모와 함께 생활했지만 김사무관은 부모와 떨어져 서울의 외가집에서 자랐고,어릴 때는 김포공항에서 눈물을 흘린 적도 많았다.이런 까닭에 그는 다른 외교관 자녀처럼 특례입학을 하지 않고 ‘실력’으로대학에 들어갔다.
친구들은 “세상이 바뀌고 있는데 왜 공무원이 되려고 하느냐”고 말리기도 했지만 대학을 졸업하던 9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자의 길에 들어섰을때 가족들은 모두 반가워했다.부친과 장인이 고위외교관이어서 공직을 화제로많은 대화를 나눌법 한데도 일이나 공직사회를 입에 올리는 적은 거의 없다.
주로 집안 일을 얘기한다.
김사무관의 공직관은 특이하다.‘한번 공무원이라고 영원한 공무원은 아니다’는 생각이다.공무원 스스로가 민간에 비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의 실력과 힘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관료생활을 시작한지 3년만인 94년 훌쩍 유학을 떠난 것도 실력을 쌓기 위해서다.그는 5년만에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정책학(금융정책학) 박사학위를받고 지난달 귀국해 국제금융국 외화자금과에서 근무하고 있다.
김사무관은 ‘김석규대사의 외동아들’이라는 주변의 인식으로 손해를 입기보다는 득을 입는 일이 적지 않다고 솔직히 말한다.윗사람을 만나도 대부분따뜻하게 대해준다는 것이다.
박정현기자 jhpark@
1999-08-1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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