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

전윤철 기자 기자
입력 1999-07-13 00:00
수정 1999-07-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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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가정의 고부(姑婦)갈등 요인 가운데는 ‘옛날’을 들먹이며 내핍을 강조하는 시어머니와 ‘오늘’을 내세우며 편리를 추구하는 며느리 사이의 견해 차이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여름철을 맞아 IMF고통이 아득한 전설인 양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휴가를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는 만큼 오히려 정신적으로 빈곤해지고 있는 것 같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지난 60년대초 이른 봄 정오 무렵,목덜미를 스치는 꽃샘바람에 몸서리를 치며 한 가난한 법대생이 서울 동숭동의 어느 대학 도서관을 향해 걷고 있었다.검게 물들인 군복상의에 역시 군복을 염색한 바지를 입고 워커를 신은,요즘말로 ‘밀리터리 룩(military look)’패션의 이 서울 유학생은 두툼한 법서(法書) 두어 권을 옆구리에 끼고 학교 정문 쪽으로 다가가다 허름한 식당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끼니를 거른 탓에 배가 무척 고팠다.

식당 유리창에 쓰인 ‘설렁탕’이라는 글자를 보고 그는 재빨리 호주머니속의 돈을 세어 보았다.자취방이 있는 청량리로 돌아갈버스 삯을 제하고 나니 돈이 모자랐다.잠시 망설이다 그는 식당 안으로 용감하게 들어가 주인 아주머니에게 “설렁탕 반 그릇만 주십시오”라고 말했다.당황해 하는 식당주인을 애써 외면한 채 식탁에 앉아 음식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귀에 중년 남자 손님의 목소리가 들렸다.“아주머니,저 학생 설렁탕 곱빼기로주세요.계산은 내 앞으로 하고요.” 지난 89년 동화 한 편 때문에 일본 열도가 울음바다에 잠긴 적이 있었다.일본 국회의원들이 의사당에서 동료가 읽어준 구리 요헤이(栗良平)의 ‘우동한 그릇’을 듣고 흐느끼기 시작한 것을 신호로 이 작품은 일본 전역을 빠르게 ‘낙루(落淚)경쟁’으로 몰아 넣었다.한 신문은 독자들에게 “울지 않고배겨낼 수 있을 지 시험하기 위해서라도 한 번 읽어 보라”고 ‘우동 한 그릇’을 권했다.

줄거리는 단순하다.홋카이도(北海道)의 한 우동집에서 전후(戰後) 어려웠던 시절 섣달 그믐날 밤 허름한 옷차림의 세 모자가 머뭇거리다 우동 두 그릇을 시킨다.2인분을 주문 받은 식당 주인 내외가 오히려 더 안절부절못해 어떻게 하면 이들 세 모자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3인분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끝내 우동 두 그릇을 곱빼기로 내 놓는다.이들 세 모자는 우동을 맛있게 먹고 돌아간다는 이야기다.

훈훈한 인간애는 적당한 가난 속에서만 피어나는지도 모른다.



전윤철 공정거래위원장
1999-07-13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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