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5·18 유감

[외언내언] 5·18 유감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9-05-20 00:00
수정 199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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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소설 ‘봄날’을 쓴 작가 임철우씨는 당시의 광주를 묻는 질문을 아주 괴로워했다.광주가 ‘소문의 벽’에 갇혀 있을 때 그는 진실을 말해 줄 수 있는 사람 가운데 하나였기에 서울 문인들은 그를 통해 궁금증을 풀고자 했다.그러나 광주에서 일어난 사실을 그대로 밝힌 그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반신반의였다.

광주민주항쟁이 일어난 다음해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문단에 나온 그가 기자에게 그때의 심정을 털어놓았을 때 가슴이 메었다.가족과 이웃들이 군화발에 짓밟히고 총칼에 맞아 피흘리고 죽어가고 있는데 언론은 침묵하고 있고 텔레비전에서는 아무일도 없다는 듯 화려한 화면의 쇼오락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음을 보아야 했던 당시 광주 시민들의 고립감과 무력감이 그대로와 닿는 듯했기 때문이다.

80년 그해 전남대 학생이었던 임철우씨는 “그때 나는 그 도시에 있었음에도 아무일도 못했다”면서 “그날 이후 나는 나 자신을 끝끝내 용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부끄럽게 살아 남은 자로서의 죄의식”이 그를 작가로만들었고 5·18을 증언하는 장편소설을 쓰게 한 것이다.그러나 그 비극의 봄날이 일어나기 훨씬 전 금남로를 등하교길로 삼았던 기자는 당시 신문사 편집국에 있었음에도 끝내 아무일도 못했다.

5·18 제19주년 기념식이 어느해보다 성대하게 치러졌다.모든 신문·방송은 상당한 지면과 시간을 할애해 이 행사를 보도했다.5·18 묘역에서 열린 기념식에는 총리를 비롯한 정부 고위인사들이 대거 참석했고 당시 광주시민들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군(軍) 총수인 국방장관과 유혈진압에 앞장섰던 11공수부대 여단장도 참석했다니 세월의 변화가 실감난다.그러나 피해자와 가해자 또는 일반 국민들 사이의 간극이 과연 얼마나 좁혀졌을까.광주민주항쟁을 폭동으로 규정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폭동 진압의 정당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강변하는 마당이니 피해자가 내민 용서와 화해의 손짓이 무참해 보인다.5·18의 진상을 잘 모르던 사람들이 그 역사성을 이제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다.작가 임철우씨에게 광주에 대해 물었던 사람들이 진상을듣고도 사태파악을 못했듯이.

80년대 문단 일각의 5·18에 대한 문학적 형상화 작업이라도 지면에 반영시키고 싶어하던 기자에게 한 선배는 “아직 10년도 지나지 않았는데 성급하다”고 충고했다.그 현명한 선배의 말처럼 2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 ‘광주’를 말하기는 쉬워졌다.그러나 아직도 진정한 이해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성급하게 역사 속으로 묻히는 듯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부끄럽게 살아 남은 자의 뒤틀린 시각일까.

1999-05-20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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