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의 국가경쟁력(張潤煥 칼럼)

부패의 국가경쟁력(張潤煥 칼럼)

장윤환 기자 기자
입력 1998-10-16 00:00
수정 1998-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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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0년 필자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월남등 몇몇 동남아 국가를 취재한 적이 있다. 그 나라들은 하나같이 부패해 있었다.그러나 당시 필자는 동남아 국가들이 대부분 개도국(開途國)이기 때문에 부패 또한 과도기적 현상쯤으로 가볍게 보아 넘겼다.한국도 부패에서 예외는 아니지만 개도국의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근거 없는 우월감을 가지고 말이다.

당시 월맹과 전쟁을 치르고 있던 월남의 부패상은 말로 다할 수 없었다.돈이면 안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결국 월남은 총체적 부패로 패망하고 수도 사이공은 ‘호치민시’가 됐다.75년 4월30일 월남이 패망하자 朴正熙 대통령은 엉뚱하게도 긴급조치 9호를 발동했다.그러나 그는 유신헌법을 철폐했거나 절대권력에 따르는 ‘절대부패’의 싹을 잘랐어야 했다.

○‘墨筆代’라는 급행료

필리핀은 당시 마르코스가 통치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부패상은 말할 것도 없다.마르코스가 국민의 힘에 몰려 권좌에서 물러난 뒤 스위스 은행에 빼돌려 놓았던 몇십억달러의 비자금이 드러났고,영부인 이멜다는 구두가 몇백 켤레나 된다고 해서 세계적인 조소거리가 됐다.아키노와 라모스 정권을 거친 오늘날의 필리핀에서 마르코스 일족이 다시 고개를 내밀고 있다.아키노나 라모스의 민주화가 현상적 민주화에 그쳤을뿐,구조화된 부정부패의 뿌리를 뽑지 못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독재의 반대어는 민주화가 아니라 부패구조의 척결이라고 해야 옳다.

70년의 인도네시아는 65년 공산당의 9·30 불발 쿠데타를 진압한 우익 군부의 실력자 수하르토장군이 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군사정권인지라 장차관은 물론 도지사와 시장 군수,심지어 산림청장 같은 직책마저도 현역 군인들이 차지하고 있었다.5·16군사쿠데타 당시 한국을 다시 보는듯 했다.朴正熙 소장이 그랬듯이 수하르토도 반공과 빈곤퇴치,그리고 ‘부정부패의 척결’을 혁명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다.자카르타에서 만난 한 화교(華僑)는 공직 사회에 만연된 극심한 부패상을 ‘묵필대’(墨筆代)라는 한마디로 요약했다.묵필대란 ‘잉크값’이라는 중국말로 공무원들에게 바치는 급행요금을 의미했다. 관청에서 서류 한장을 떼더라도최말단에서부터 주사·계장·차석·과장·부국장·국장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묵필대를 바쳐야 한다는 것이었다.그것도 공공연하게 말이다.수하르토가 그동안 얼마나 빈곤을 퇴치하고 부정부패를 척결했는지는 잘 모른다.다만 수하르토가 국민의 힘에 몰려 권좌에서 밀려난 뒤 부패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으며,인도네시아 또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체제에 들어갔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다.

○IMF 구제금융의 뿌리



‘사돈 남 말하고 있는지’ 모르겠다.아시아의 몇마리 용들 가운데 선두를 달린다던 한국은 구제금융에서도 선두주자 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정치권과 재계와 공직사회가 부패의 고리로 서로 뒤엉켜 나라를 송두리째 부도낸 마당에 더이상 할 말이 있는가.동남아 국가들을 내려다 보았던 그때로부터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 뒤늦게 한가지 깨달은 바가 있다.국가경쟁력도 가려가며 높아야 한다는 사실이다.한국을 포함해서 앞에 말한 나라들은 적어도 ‘부패의 국가경쟁력’에서는 세계 상위권에 속한다.그러나 엉뚱하게 높은 부패의 국가경쟁력이 바로 구제금융을 불러온 뿌리다.<논설고문 yhc@seoul.co.kr>
1998-10-16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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