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부터 손대나” 한숨만/상계동 노원마을

“어디부터 손대나” 한숨만/상계동 노원마을

입력 1998-08-10 00:00
수정 1998-08-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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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건 밥그릇과 숟가락” 부녀자 울먹/언제 무너질지몰라 집밖서 발만 동동

한바탕 격전을 치른 전쟁터 같았다.진흙속에 처박혀 있는 바퀴 빠진 자전거,마당 한 구석에 쓰러져 있는 냉장고,찌그러진 창틀에 덩그렇게 걸쳐져 있는 양파와 감자….

터진 중랑천 제방에서 흘러든 흙탕물에 잠겼던 서울 노원구 상계1동 노원마을.9일 상오 물이 빠지자 뜬 눈으로 밤을 새고 집으로 돌아온 주민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부서지고 더럽혀진 집과 엉망진창으로 나뒹구는 가재도구들이었다.

주민들은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골목길은 움푹움푹 패어 보도블록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고 담벼락은 거센 물살에 구멍이 뚫려 흉물스런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을 옆에 있는 수십동의 비닐하우스도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애써 가꿔왔던 호박이나 고추도 시커먼 흙 속에 묻혀 있었다.

주민 金尙恰씨(67)는 “이곳에서 36년을 살았지만 이런 물난리는 처음”이라면서 “어디서부터 정리를 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으로 들어간 중년의 주부는 처참하게 훼손된 방이며 부엌을 보고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온통 더럽혀진 좁은 방에서는 오물 묻은 달력만이 주인을 맞았다.어머니를 달래려던 중학생 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모녀는 서로 얼싸안고 한동안 울었다.

집이 심하게 파손된 주민들은 언제 무너질지 몰라 들어가지도 못하고 집 밖에서 발만 동동 굴렀다.

金모씨(50·여)는 “집안에 있던 쌀 15가마니와 연탄 1,000여장이 흔적도 없이 물에 쓸려가버렸다”면서 “쓸 수 있는 것은 밥그릇과 숟가락 뿐”이라며 울먹였다.<朴峻奭 기자 pjs@seoul.co.kr>
1998-08-1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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