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쟁/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문화전쟁/任英淑 논설위원(外言內言)

임영숙 기자 기자
입력 1998-07-04 00:00
수정 1998-07-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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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라기공원’과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제르미날’이 만들어졌다. 에밀 졸라 원작에,‘마농의 샘’의 클로드 베리가 감독하고,제라르 드파르듀가 주연한 이 영화는 프랑스 영화사상 최대의 제작비를 들인 최고의 대작으로 손꼽혔다. 영화의 실제 무대인 릴에서 시사회가 열리던 날,당시 프랑스 대통령 미테랑과 문화부 장관 자크 투봉을 비롯한 거물급 정치인과 각료,예술인 수백명이 TGV특별편으로 대거 몰려갔다. 미국 영화에 밀리는 프랑스 영화를 살리기 위한 시위였다.

그러나 ‘제르미날’은 미국영화 ‘주라기공원’에 참패했다. 파리에서 ‘제르미날’의 관객 동원수가 ‘주라기공원’의 10분의1도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프랑스 최고의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는 ‘주라기공원’에 출연해 달라는 스필버그 감독의 제의를 거절했지만 프랑스 관객들은 ‘주라기공원’이 상영되는 영화관 앞에 줄을 섰다. 굶주린 광부를 그린 ‘제르미날’의 무거운 주제보다 ‘주라기공원’의 재미를 선택한 것이다.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햄버거,할리우드 영화로 상징되는 미국 문화는 미국의 주요 수출상품이다. 미국이 만성적인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허덕일 때도 영화를 비롯한 미국의 문화산업은 항공기 산업과 함께 매년 거액의 흑자를 안겨준 효자였다. 미키마우스와 마이클 잭슨,마돈나등은 미국에서 보다 해외에서 2배 이상 팔려 나가고 있다. 연간 200억 달러 규모에 이르는 팝과 록,재즈 등 미국 음악시장은 총수입의 70%를 해외에서 벌어 들인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과 미국에 국경을 맞댄 캐나다·남미는 미국문화에 거의 점령 당한 상태다. 유럽에서 상영되는 TV프로그램의 60%,영화의 80%가 미국 등 비유럽산인데 비해 유럽 영화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단 1%에 불과하다.

지난달 30일 캐나다 오타와에서 열린 세계 문화장관 회의는 이같은 미국 문화의 세계 지배에 맞서 문화의 다양성과 특성을 보존하려는 모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냉전 종식후 새로운 경제전쟁의 양상으로 번지고 있는 문화전쟁에서 독점적 지배 세력으로 군림하는 미국에 대한 연합전선이 모색된 것이다.

그러나 19개국 장관이 참석한 이 회의에 우리 문화관광부 장관은 참석하지 않았고 하급관리가 대신 나가지도 않았다 한다. “세계화는 문화적 단일성을 가져오고 궁극적으로 문화의 황폐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유네스코의 경고가 우리와는 무관하다는 것일까.

1998-07-04 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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