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 나주목(羅州牧)조의 십이영(十二詠)가운데 제8영. “붉은뱃전(舷) 검은 돛대가 파도에 가득하고/나지막한 집 마을마다 노적가리 높구나/백만섬 영산창(榮山倉)의 곡식있으니/올해는 백성들 고혈짠다는 말 하지들 마소”.뱃길따라 세곡(稅穀)을 실어 날랐던 왕조시대, 지금의 영산포언저리에 조창(漕倉)있었음을 알려준다.
본류길이 115.5㎞의 영산강.지난날에는 서해의 한사리 밀물이 나주까지 밀려들었다.영산포까지는 70년대 중반까지도 작은배들이 드나들면서 수산물거래로 박신거렸고.후백제 甄萱과 弓裔휘하의 王建이 공방전을 벌인 곳도 영산강하류 영암군 덕진포(德津浦)께였다.912년 견훤이 중국으로 보내는 교역선을 영광앞바다에서 나포한 왕건은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나주포구로 개선하고있다.
수리시설 없는 영산강은 가뭄과 홍수에 민감하여 유역주민에게 피해를 주어왔다.黃玹의 <매천야록>은 1876년의 가뭄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는 가하면 그 이듬해에는 장마로해서 논밭곡식이 거의 썩어 버렸다고 써놓는다.현대로 와서는 1967년의 나주지방 가뭄이 유명하다.이해 여름 40일 동안의 강우량이 고작 37㎜였다는 것 아니던가.
이같은 가뭄과 홍수의 되풀이를 두고는 목포의 여류작가 朴花城의 작품을 떠올린다.여러 단편 가운데 ‘홍수전후’가 1934년,‘고향없는 사람들’과‘한귀(旱鬼)’가 1935년에 발표되었는데 가뭄·홍수와 영산강유역 주민들의 참상을 그리고있다.“작년 홍수때문에 쌀알 몇밖에 건져보지못한” 오삼룡이네 등 아홉집 가족이 평안남도 강서농장으로 이민하게 되는 시작이 ‘고향없는 사람들’.그곳에서 다시 귀향하기로 작정한 사흘전 오삼룡은 가장 친하게 지냈던 고향의 강판옥으로부터 긴편지를 받는다.“…하늘이 무심하여 작년에는 자네들을 몰아내고 금년에는 개벽이래로 두번도 없는 큰가뭄이 우리들을 마저 죽여 고향에서 쫓아내네그려.…”삼룡이는 이 편지를 받고 고향에 갈 생각을 버린다.
광주시에서 추진하는 영산강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의 벽에 부딪혀 있다.그 개발이 생태계를 파괴하게 돼있다는 것이 환경당국의 눈길.홍수예방을 위한 범위안에서계획을 다시 짜보라는 주문인 것으로 알려진다.개발에 따르는 파괴와 보존의 조화는 항상 어려운 대목.억겁의 역사를 안은채 오늘도 영산강은 말없이 흐른다.<칼럼니스트>
본류길이 115.5㎞의 영산강.지난날에는 서해의 한사리 밀물이 나주까지 밀려들었다.영산포까지는 70년대 중반까지도 작은배들이 드나들면서 수산물거래로 박신거렸고.후백제 甄萱과 弓裔휘하의 王建이 공방전을 벌인 곳도 영산강하류 영암군 덕진포(德津浦)께였다.912년 견훤이 중국으로 보내는 교역선을 영광앞바다에서 나포한 왕건은 승리한 군대를 이끌고 나주포구로 개선하고있다.
수리시설 없는 영산강은 가뭄과 홍수에 민감하여 유역주민에게 피해를 주어왔다.黃玹의 <매천야록>은 1876년의 가뭄으로 굶어죽는 사람이 속출했는 가하면 그 이듬해에는 장마로해서 논밭곡식이 거의 썩어 버렸다고 써놓는다.현대로 와서는 1967년의 나주지방 가뭄이 유명하다.이해 여름 40일 동안의 강우량이 고작 37㎜였다는 것 아니던가.
이같은 가뭄과 홍수의 되풀이를 두고는 목포의 여류작가 朴花城의 작품을 떠올린다.여러 단편 가운데 ‘홍수전후’가 1934년,‘고향없는 사람들’과‘한귀(旱鬼)’가 1935년에 발표되었는데 가뭄·홍수와 영산강유역 주민들의 참상을 그리고있다.“작년 홍수때문에 쌀알 몇밖에 건져보지못한” 오삼룡이네 등 아홉집 가족이 평안남도 강서농장으로 이민하게 되는 시작이 ‘고향없는 사람들’.그곳에서 다시 귀향하기로 작정한 사흘전 오삼룡은 가장 친하게 지냈던 고향의 강판옥으로부터 긴편지를 받는다.“…하늘이 무심하여 작년에는 자네들을 몰아내고 금년에는 개벽이래로 두번도 없는 큰가뭄이 우리들을 마저 죽여 고향에서 쫓아내네그려.…”삼룡이는 이 편지를 받고 고향에 갈 생각을 버린다.
광주시에서 추진하는 영산강 개발사업이 환경영향평가의 벽에 부딪혀 있다.그 개발이 생태계를 파괴하게 돼있다는 것이 환경당국의 눈길.홍수예방을 위한 범위안에서계획을 다시 짜보라는 주문인 것으로 알려진다.개발에 따르는 파괴와 보존의 조화는 항상 어려운 대목.억겁의 역사를 안은채 오늘도 영산강은 말없이 흐른다.<칼럼니스트>
1998-04-08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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