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탈락에 승복… 도정전념 다짐도/병역파문 이 대표 급락에 마음바꿔
지난 3월24일 이인제 경기지사가 신한국당 대선 예비주자중 처음으로 경선출마를 선언했을때 당 안팎에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정치권에서는 차차기를 노린 ‘얼굴 알리기’쯤으로 평가했었다.
그러나 TV토론이 시작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지지율이 급상승,각종 여론기관이 실시한 여야 대선 예비주자들간의 가상대결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당내에서는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전당대회에서의 ‘대의원혁명’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심’은 달랐다.신한국당 대의원들은 지난 7월21일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대표를 15대 대선후보로 선출했다.결선투표에 나섰던 이지사는 분루를 삼키면서도 기자회견에서 “경선결과에 승복한다”면서 “앞으로 도정에만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당연히 당 고위관계자들은 낙관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정치권이 ‘병역정국’에 휘말리면서 급반전됐다.이대표가 두 아들의 병역면제문제로 곤욕을 치르기 시작한 8월초부터 이지사 진영은 ‘대권·당권 분리’ 등 당 개혁을 명분으로 이대표측을 몰아부치기 시작했다.이지사는 이후 서석재 서청원 의원 등 ‘반이’ 민주계 중진들을 잇따라 접촉,‘후보교체’ ‘독자출마’에 대한 지지를 구하는 한편 와병중인 최형우 고문의 지원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달려가기까지 했다.
이지사의 행보에 대한 여권의 대응도 숨가쁘게 이어졌다.이지사의 ‘정치 대부’인 김영삼 대통령은 이지사를 세번씩이나 만나 독자출마를 집요하게 만류했다.이대표도 직접,또는 측근들을 통해 이지사의 출마저지에 총력을 기울였다.한때 이지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설득작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지사는 오랜 고심끝에 13일 “민심의 바다에 뛰어들겠다”면서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정치적 토양이었던 신한국당을 탈당했다.<박홍환 기자>
지난 3월24일 이인제 경기지사가 신한국당 대선 예비주자중 처음으로 경선출마를 선언했을때 당 안팎에서는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이었다.정치권에서는 차차기를 노린 ‘얼굴 알리기’쯤으로 평가했었다.
그러나 TV토론이 시작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지지율이 급상승,각종 여론기관이 실시한 여야 대선 예비주자들간의 가상대결 조사에서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당내에서는 대선후보를 결정하는 전당대회에서의 ‘대의원혁명’ 가능성이 조심스럽게 거론되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대심’은 달랐다.신한국당 대의원들은 지난 7월21일 전당대회에서 이회창 대표를 15대 대선후보로 선출했다.결선투표에 나섰던 이지사는 분루를 삼키면서도 기자회견에서 “경선결과에 승복한다”면서 “앞으로 도정에만 전념하겠다”고 다짐했다.당연히 당 고위관계자들은 낙관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정치권이 ‘병역정국’에 휘말리면서 급반전됐다.이대표가 두 아들의 병역면제문제로 곤욕을 치르기 시작한 8월초부터 이지사 진영은 ‘대권·당권 분리’ 등 당 개혁을 명분으로 이대표측을 몰아부치기 시작했다.이지사는 이후 서석재 서청원 의원 등 ‘반이’ 민주계 중진들을 잇따라 접촉,‘후보교체’ ‘독자출마’에 대한 지지를 구하는 한편 와병중인 최형우 고문의 지원을 받기 위해 중국으로 달려가기까지 했다.
이지사의 행보에 대한 여권의 대응도 숨가쁘게 이어졌다.이지사의 ‘정치 대부’인 김영삼 대통령은 이지사를 세번씩이나 만나 독자출마를 집요하게 만류했다.이대표도 직접,또는 측근들을 통해 이지사의 출마저지에 총력을 기울였다.한때 이지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 설득작업이 주효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지사는 오랜 고심끝에 13일 “민심의 바다에 뛰어들겠다”면서 대선출마를 공식 선언하고 정치적 토양이었던 신한국당을 탈당했다.<박홍환 기자>
1997-09-14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