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기원전 332년 이집트를 점령하고 나일강 하구에 새 도시를 세우도록 명령했다.이 도시 알렉산드리아는 9년후 알렉산더 대왕이 죽자 그의 신임을 받던 무장 프톨레마이오스 지배아래 들어간 이집트의 수도가 된다.그리스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치하에서 알렉산드리아는 당시 헬레니즘 문명의 중심지가 되며 유클리드의 기하학,헤로필로스의 해부학도 이 도시에서 꽃핀다.
3백년간 계속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의 여왕이 7명이나 있었다.그 마지막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에 이어 지중해 세계의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떠 오른 로마의 정복자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가 안토니우스가 그의 정적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자 독사에 물려 자살했다는 전설을 남겼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을 주축으로 한 수중탐사반이 알렉산드리아 앞 바다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왕궁과 안토니우스의 저택 잔해·술항아리·포장도로등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유물들을 수천점 인양했다고 외신은 전한다.긴 방파제로 받쳐지고 있는아름다운 항구가 2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양호한 상태로 수중에 보존돼 있어 탐사반은 클레오파트라의 손이 닿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열주들을 만져보며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수중고고학에 의해 역사와 전설에 얽힌 고대 이집트도시 알렉산드리아가 2천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알렉산드리아 해저에서는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축조됐다가 13세기에 대지진으로 사라진 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온 파로스등대의 잔해가 올해초 인양된 바도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도 신안 해저유물 발굴(1976∼1984)이후 수중고고학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지나친 성급함이 가짜 「별황자총통」 사건만 불러 일으켰다.꾸준한 투자와 관심으로 수중고고학을 육성해 장보고 충무공의 찬란한 발자취를 비롯,우리의 해양역사도 되살려야 할 것이다.<임영숙 논설위원>
3백년간 계속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는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의 여왕이 7명이나 있었다.그 마지막 클레오파트라는 그리스에 이어 지중해 세계의 새로운 지배세력으로 떠 오른 로마의 정복자 시저와 안토니우스를 유혹했다가 안토니우스가 그의 정적 옥타비아누스에게 패배하자 독사에 물려 자살했다는 전설을 남겼다.
프랑스 고고학자들을 주축으로 한 수중탐사반이 알렉산드리아 앞 바다에서 클레오파트라의 왕궁과 안토니우스의 저택 잔해·술항아리·포장도로등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유물들을 수천점 인양했다고 외신은 전한다.긴 방파제로 받쳐지고 있는아름다운 항구가 2천년이 흐른 지금에도 양호한 상태로 수중에 보존돼 있어 탐사반은 클레오파트라의 손이 닿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열주들을 만져보며 감회에 젖었다고 한다.
수중고고학에 의해 역사와 전설에 얽힌 고대 이집트도시 알렉산드리아가 2천년의 잠에서 깨어난 것이다.알렉산드리아 해저에서는 세계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시대에 축조됐다가 13세기에 대지진으로 사라진 뒤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온 파로스등대의 잔해가 올해초 인양된 바도 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에서도 신안 해저유물 발굴(1976∼1984)이후 수중고고학의 중요성이 대두됐지만 지나친 성급함이 가짜 「별황자총통」 사건만 불러 일으켰다.꾸준한 투자와 관심으로 수중고고학을 육성해 장보고 충무공의 찬란한 발자취를 비롯,우리의 해양역사도 되살려야 할 것이다.<임영숙 논설위원>
1996-11-06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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