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1㎞ 거대한 「입자가속기」에 압도/경제부국 엄청난 투자 부러움이 오기로

나는 지난 8월 방학이 끝날 즈음 뜻밖의 기회를 맞았다.일본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물리연구소 「고에너지연구소」의 초청으로 18일간의 일정으로 일본에 가게 됐다.

8월24일 일본 토쿄의 나리타공항을 향하는 비행기를 탈 때까지 견학의 설렘으로 들뜬 마음을 다 잡지 못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의 물리학도도 대거참석하는 자리였다.한국에서는 서울대생 3명,연세대생 1명,고려대생 2명이 대표로 선발됐다.

나리타공항에서 1시간30분거리인 쓰구바시에 있는 연구소는 먼저 규모에서 나를 압도했다.가로·세로 2㎞에 달하는 넓은 부지 위에 세워진 반경 1㎞의 「입자가속기」는 중생대 공룡처럼 거대한 모습으로 눈앞에 다가섰다.국내에서 유일한 포항공대의 가속기는 규모면에서 비교도 되지 않았다.

「입자가속기」는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나 원자 등 입자를 극히 빠른 속도로 가속시켜 물질간의 상호작용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기계로 기초물리학에서는 없어서는 안될기기다.그런 만큼 설치비용도 천문학적이다.우리의 경제수준이 이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이 나를 감쌌다.

연구소에서 일하는 연구원이 묵는 기숙사도 가히 초일류호텔이었다.기초과학연구에 최우선적인 배려를 하는 일본의 의식수준이 다시 나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게다가 거기서 일하는 연구원 등은 한결같이 여유가 있었다.연구에 쏟는 이들의 열정도 물론 인상적이었다.

찬탄과 부러움으로만 일관한 일정이 모두 끝난 마지막날.나리타공항을 떠나 김포공항으로 향하는 2시간30분동안은 떠날 때의 설렘은 오간 데 없이 갖가지 상념으로 정신은 허공을 헤매고 있었다.세계적인 물리학도의 꿈을 안고 대학원에 진학한 나의 위치는 어디일까.

세계최대의 경제부국으로 성장한 일본의 기초과학에 대한 엄청난 투자.기초과학에서 한발 늦은 우리가 선진국를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야 할까.그리고 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한없이 왜소해지면서도 동시에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가 가슴속에서 불끈 치밀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