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경학삼금」이 있었는데(박갑천 칼럼)

옛날엔 「경학삼금」이 있었는데(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5-02-08 00:00
수정 1995-02-08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삼김」이란 말 나온지가 언젠데 지금껏 그 말은 신문지상에 오르내린다.특히 정치에 대해서는 말할만한 자질도 식견도 없는 터이기는 하지만 생명 한번 질긴 낱말이로구나 싶어지기는 한다.

본디 한문에서의 「삼금」은 금·은·동을 이르면서 쓰였다.그래서 명줄긴 말로 된 것인진 모르겠다.불교에서는 삼밀금강의 약칭으로 쓰이는 모양이다.이는 삼밀(어밀·의밀)의 공덕이 견고함에 비기면서 쓰인다고 한다.「옥편」이나 「정자통」 등에는 「김」이 셋인 「금」자도 나온다.금이 불어난다(불어나라)는 뜻으로 사람 이름이나 가게 이름에 쓰였던 듯하다.하건만 우리의 「삼금」아닌 「삼김」에서는 금속소리쪽이 더많이 났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조선조 초기에도 「삼김」이 있었다.「필원잡기」나 「해동명신록」 등에 나와있다.김구·김반·김말의 세사람을 가리켜 당시 사람들이 「경학삼김」이라 불렀다는 것이다.그 까닭은 세사람이 다 경·사에 밝고 성리학 연구가 깊은 위에 국학(성균관)교수로서 후진양성에 공을 쏟은 공통점에 있었다.공통점은 또 있다.세사람 모두 시호가 문장이었다는 사실이다.시법에 『널리 듣고 많이 본 것을 문이라 하고 사람 가르치기를 게을리 아니함을 장이라 한다』는 데서였다.

구는 윤상의 뒤를 이어 성균관의 관장이 되었는데 해박한 식견이 윤을 뛰어넘었다고 말하여진다.반이 맨먼저 타계했다.그는 성균관재직 40년에 많은 명사를 길러냈다.사신으로 북경에 갔을 때 누군가 어용족자에 제목을 써달라 해서 써준 글이 빼어나 중국 사람들을 감탄케 했다 한다.

남은 양김(구와 말)은 나이 80이 넘게 살았다.그런데 말의 경우 딸하나만 있고 아들이 없었다.그는 『들으니 천사람의 눈(지식을 말함)을 열어주는 자는 음보를 받는다 했는데 내가 50여년 동안 학관에 있으면서 사람 가르치는데 전념했건만 자식이 없으니 내 학문이 거짓되어 남에게 덕이 되지 못한 때문이 아닐까』하면서 자책했다고 한다.그는 단정하게 의관을 갖추고 홀을 잡은채 좌화한 것으로 알려진다.

선비의 길을 걷다간 옛「삼김」의 삶을 기린다.인생이란 역시 각자의 몫이다.다만 역사에 향훈을 뿌리는길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본다.
1995-02-08 6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