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두딸 북수용소 억류 확인 자수간첩 오길남씨

아내·두딸 북수용소 억류 확인 자수간첩 오길남씨

입력 1994-08-04 00:00
수정 1994-08-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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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들 생지옥서 비참한 생활”/3차례 자살기도로 특별감시대상/「주체사상 십계명」 어기면 바로 수용

『요즘 북한 정치범수용소의 실상이 속속 알려질 때마다 통한의 몸서리가 엄습해 옵니다.아내와 두 딸녀석을 생지옥에 남겨 놓고 나온뒤 하루하루 자괴감에 짓눌려 살아왔는데 이번에 정치범수용소의 명단을 실제로 보고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바로 나자신이 몹쓸 짓을 두번 한 것입니다.가족을 북녘에 데리고 간 것도,함께 데리고 나오지 못한 것도 차마 있을 수 없는 짓이었습니다』.

남북분단현실의 생채기가 온몸과 마음에 뒤엉켜 있는 오길남씨(52).

독일유학중 북한체제에 동경을 느껴 85년 아내 신숙자씨(52)와 두 딸 혜원(18)·규원양(15)을 데리고 월북했다가 1년만에 혼자 탈출,6년간의 독일망명생활을 거쳐 92년에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최근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 강제납북자들의 명단발표를 계기로 이곳의 비참한 실상이 밝혀지면서 가족생각에 장탄식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아내와 두딸이 수용소에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한 것은 92년 북한 요덕수용소에 감금돼 있다 탈출한 귀순자 안혁씨를 통해서였습니다.백방으로 수소문해도 소식을 알 수 없었던 가족들이 생지옥이나 다름없는 수용소에 있다는 얘기를 전해듣는 순간 온몸이 마비될 지경이었지요』

오씨가 2년전 안씨로부터 전해들은 가족들의 수용소생활은 생각마저 끔찍할 정도로 비참한 것이었다.

안씨가 수용돼 있던 요덕수용소 대숙지구에 이들이 수용된 것은 87년 11월말쯤으로 안씨의 독신자숙소와 매우 가까운 가족세대숙소였다.

오씨의 아내 신씨는 도착한 이튿날 방안에서 목을 매 자살을 꾀했으며 1주일 간격으로 3번이나 방안에 불을 질러 두딸과 동반자살하려다 보위부원에게 발각되어 특별감시 대상으로 지목받아 아예 감금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안씨는 보위원 몰래 신씨를 도와주면서 그녀가 독일원에서 간호원생활을 하다 남편을 따라 월북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으며 『남편과 같이 북한에 들어와 고급 주택가인 평양창광거리에 살다 남편은 행방불명되고 나머지 가족들은 보위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이곳에 왔다』는 얘기와 『어린 딸들과 같이 이곳에서 짐승같은 생활을 하다 병들어 죽을 것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하다』는 하소연을 들었다고 한다.

신씨는 88년부터 수용소내 결핵요양소 간호원으로 배치되었으나 식량이 없어 두 딸이 산나물을 캐러다니는등 비참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북한에서 지낸 1년동안 오씨는 철저한 감시하에 제한된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정치범수용소나 집단수용소에 관한 자세한 얘기는 알지 못했었다.단지 밤에 끌려간뒤 소식이 끊긴 사람들의 얘기는 종종 들었다.

오씨는 『당시 북한주민들사이에선 입조심하지 않으면 「시골」에 끌려간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시골은 수용소를 뜻하는 은어였다』고 말했다.

오씨는 또 『북한에는 「유일사상확립의 10대원칙」이라는 십계명 비슷한 것이 있어 어길 경우 누구나 곧바로 수용소로 직행했다』며 『김일성일가에 대한 비판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언급자체가 범법사유였다』고 밝혔다.

70년 서울대를 졸업하고 독일로 유학가 경제학을 전공하던 오씨는 80년에 독일에 정치적 망명을 한뒤 반정부단체인 「민주사회건설협의회」에서 적극적인 활동을 하다 북한에 대한 동경으로 아내의 간곡한 만류를 뿌리치고 85년 12월 가족들과 자진월북했다.

오씨는 북한에서 대남선전방송인 「구국의 소리」에 근무했으며 이때 69년 납북된 대한항공 여승무원 성경희·정경숙씨등과 함께 일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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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과 가족들의 운명을 송두리째 망가뜨려버린 자신의 선택에 대한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씨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어리석음을 실토하는 수기 「내 아내와 아이들을 돌려주오」를 지난해 발간하기도 했다.<이순녀기자>
1994-08-04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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