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결받은 님비현상(사설)

판결받은 님비현상(사설)

입력 1994-08-03 00:00
수정 1994-08-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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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들의 집단민원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혐오시설의 설립허가를 기피하던 행정관청이 법의 판정으로 자세를 고쳐야만 하게 되었다.서울고법 특별8부는 2일 신경정신병원을 짓기위해 신청한 부지사용허가를 민원이 두려워 거부해오던 경기도 강화군청에 패소판결을 내렸다.이 판례는 앞으로 혐오시설에 대한 무조건 반대의 소위 님비(NIMBY)현상에 제동을 거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무엇보다 주민이 반대만 하면 이를 기화로 공공적 책임마저 방치하던 행정의 행태에 경종이 된다는 의미가 크다.

혐오시설은 사람이 살기 위한 모든 시설에서도 특히 필수불가결한 기본시설이다.식당이 있으면 화장실이 있어야 하고 내 가족에 환자가 있으면 병원이 있어야 한다.자신이 쓰레기를 문앞에 내놓으려면 당연히 어디엔가 적환장과 소각장이 있어야 쓰레기는 옮겨 질수가 있다.이 단순한 상식이 부지불식간 해결불능의 과제로 변해 왔다.쓰레기매립장,하수처리장만이 아니라 정신병원,장애자복지시설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혐오시설 거부 집단민원은 그 목소리를나날이 키워왔고,이에 대응하는 논리는 이상하게도 작아져 왔다.

하긴 어떤 노력도 없었다고 할수는 없다.환경처는 대학전문교수들에게 주민설득을 부탁하는 일까지 했다.하지만 집단이기주의가 계속해서 승세를 유지해온 것이 사실이다.이렇게 된 이유의 가장 큰 배경은 행정의 정치적 부담에 있었다.공공성에 대한 책임보다는 어떤 보너스를 주고서도 비정치적 민원을 축소시켜야 한다는 것을 오히려 정책과제로 삼았던 시기까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때도 아니다.뿐만 아니라 그사이 해결해 놓지 못한 혐오시설의 태부족상태는 더이상 방치할수 없는 지경에 다달았다.군단위로 곳곳에 1백억원이상 예산을 확보하고도 몇년씩 손도 못대고 있는 혐오시설사업이 부지기수다.

사회기본시설로서의 혐오시설을 언제까지 집단민원 무마로만 해결할수 있을것인가.이 문제를 우리는 좀 심각하게 들여다 볼때가 되었다.하긴 주민자신들의 각성이 없는것은 아니다.최근 서울 중랑구에 만들어진 「쓰레기소각장건설부지선정위원회」가 그 좋은 예이다.중랑구주민들은 구민의식조사까지 해서 구내소각장건설에 찬성 83.7%라는 높은 공감대를 얻어내기까지 했다.

선진화는 오래된 우리의 지향이고 국제화는 이시대의 구체적 목표이다.그러나 사회기본시설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특히 이것이 예산문제 이전에 주민의 단순한 이기주의와 행정의 무소신 안일주의의 소산이라면 이것만으로도 우리의 목표달성은 무망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이번 판례가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각성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1994-08-03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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