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어떤 위치의 말인가.오늘의 지구촌에서 힘의 맏형격인 미국사람들이 쓰는 말이 아닌가.주인이 힘이 있으면 그 밑에서 부림을 받는 종도 빳빳이 고개를 세우는 법이다.말도 그렇다.그래서 영어에는 힘이 있다.자멘호프의 고독한 에스페란토가 아니다.목에 힘줄을 세우면서 지구촌의 에스페란토화 해나가는 말이 영어다.
의학·과학·철학…등의 학술용어에는 독일어가 많다.예술일반이나 외교용어에는 프랑스어가 많다.그말이 그 분야에서 누린 지난날의 위치를 말해준다.그런데 우리가 외래어(또는 외국어)로서 받아들인 그런 말들의 일부가 현실의 강자 영어 앞에 움츠러드는 경우도 생겨난다.가령 독일어에서의 알레르기(Allergie)나 가제(Gaze)가 영어식인 앨러지(allergy)나 고즈거즈(gauze)로 되고 있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같은 영어의 강세에 자존심 상한 반응을 민감하게 보이는 나라가 프랑스이다.그들은 「프랑스어 보호법안」을 만들어 공석상에서의 말이나 서류상의 문자에 영어를 쓰면 벌금을 물게 규정했다.얼마전 하원을 통과했는데 쓰지 않아야할 영어낱말은 미팅·에어백등 3천5백에 이른다.이때까지는 대범하던 영어권이 이번에는 맞불을 놓았다.영국하원의 앤터니 스틴의원이 프랑스어 사용금지법안을 만들어 곧 정식제출한다는 것이 아니던가.말의 자존심싸움이다.
일부 언어학자의 부인·냉소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민족 사이에는 역시 「신비로운 연계의 고리」가 있음을 뒷받친다.이 일뿐 아니라 지구촌 다른곳에서도 그걸 느끼게 하는 일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예컨대 캐나다 퀘벡주의 프랑스계 주민들이 프랑스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하자고 열을 올리는 것도 그것이다.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영어와 함께 줄루어등의 토박이말을 인정하는 것이 흑백이해의 지름길이라고 외쳐지는 일이나 일본 북쪽의 아이누어 배우기운동 확산 또한 그것이다.
이같은 겨레말자존심 싸움을 보면서 7백년전의 한 선인을 떠올려본다.이제현의 「역옹패설」에 나오는 충정공 홍자번이 그사람이다.몽골말을 잘하는 유청신이 사신과 몽골말로 몇마디 주고받았다.이를 본 충정공이 역관을 불러 호통친다.『너는 어디 있었기에 재상으로 하여금 남의 말을 하게 하느냐』 유청신을 간접적으로 나무라는 꼴이어서 그는 얼굴을 붉히고 땀을 흘렸다.유재상은 그후부터 술자리에서까지도 통역을 세웠다.우리말의 자존심을 내세운 충정공의 정신이 빛나지 않은가.
오늘의 우리는 우리말의 자존심을 얼마나 지켜내고 있는 것인가.영어프랑스어 싸움에서 느끼는바가 커야겠다.
의학·과학·철학…등의 학술용어에는 독일어가 많다.예술일반이나 외교용어에는 프랑스어가 많다.그말이 그 분야에서 누린 지난날의 위치를 말해준다.그런데 우리가 외래어(또는 외국어)로서 받아들인 그런 말들의 일부가 현실의 강자 영어 앞에 움츠러드는 경우도 생겨난다.가령 독일어에서의 알레르기(Allergie)나 가제(Gaze)가 영어식인 앨러지(allergy)나 고즈거즈(gauze)로 되고 있는 따위가 그것이다.
이같은 영어의 강세에 자존심 상한 반응을 민감하게 보이는 나라가 프랑스이다.그들은 「프랑스어 보호법안」을 만들어 공석상에서의 말이나 서류상의 문자에 영어를 쓰면 벌금을 물게 규정했다.얼마전 하원을 통과했는데 쓰지 않아야할 영어낱말은 미팅·에어백등 3천5백에 이른다.이때까지는 대범하던 영어권이 이번에는 맞불을 놓았다.영국하원의 앤터니 스틴의원이 프랑스어 사용금지법안을 만들어 곧 정식제출한다는 것이 아니던가.말의 자존심싸움이다.
일부 언어학자의 부인·냉소에도 불구하고 언어와 민족 사이에는 역시 「신비로운 연계의 고리」가 있음을 뒷받친다.이 일뿐 아니라 지구촌 다른곳에서도 그걸 느끼게 하는 일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예컨대 캐나다 퀘벡주의 프랑스계 주민들이 프랑스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하자고 열을 올리는 것도 그것이다.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영어와 함께 줄루어등의 토박이말을 인정하는 것이 흑백이해의 지름길이라고 외쳐지는 일이나 일본 북쪽의 아이누어 배우기운동 확산 또한 그것이다.
이같은 겨레말자존심 싸움을 보면서 7백년전의 한 선인을 떠올려본다.이제현의 「역옹패설」에 나오는 충정공 홍자번이 그사람이다.몽골말을 잘하는 유청신이 사신과 몽골말로 몇마디 주고받았다.이를 본 충정공이 역관을 불러 호통친다.『너는 어디 있었기에 재상으로 하여금 남의 말을 하게 하느냐』 유청신을 간접적으로 나무라는 꼴이어서 그는 얼굴을 붉히고 땀을 흘렸다.유재상은 그후부터 술자리에서까지도 통역을 세웠다.우리말의 자존심을 내세운 충정공의 정신이 빛나지 않은가.
오늘의 우리는 우리말의 자존심을 얼마나 지켜내고 있는 것인가.영어프랑스어 싸움에서 느끼는바가 커야겠다.
1994-06-29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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