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끼기 흉내내기… 이젠 고만둬야(박갑천 칼럼)

배끼기 흉내내기… 이젠 고만둬야(박갑천 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4-03-02 00:00
수정 1994-03-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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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도 창작이라고 말한 신문인이 한국일보의 장기영초대사장이었다.외국신문등 다른 지면이 잘한 점을 어떻게 창의적으로 받아들여 내 뼈와 살로 만드느냐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었다고 생각한다.멋진 편집 빼어난 제목에 욕심이 남달랐던「장기자」로서의 명언이었다고 할 것이다.

이런 경우의 모방이란 말을 너무 직설적으로만 받아들일 일은 아니다.좀 거창하게 말한다면 인류사 그것이 모방 속에 이어져 내려온다고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먹고자고 생각하고 배우는 일상생활 자체부터가 모방의 연속 아니던가.다만 거기에 자그만 창의를 보태면서 한걸음씩 발전을 거듭해 온다는 것 뿐이다.『책에서 책 나온다』는 말도 그같은 인류의 발자취를 설명한다.

인간세계는 신의 세계의 모방이라 했던가.모방을 하면서 살아오는 까닭이 거기 있는건지 모른다.또 그래선지 세상에는 희한한 모방꾼도 있다.「용재총화」(용재총화:권3)에 보이는 축구스님 같은 사람이다.글씨를 잘쓴 그는 항상『내 필법은 독곡(독곡:문경공성석린의 아호)과 같다』고 했다.어느날 독곡이그의 방에 와서 걸려있는 그의 글씨를 보더니 말하더라나.『이건 내가 아무때 아무데서 쓴 것인데 그대가 어떻게 구했지?』

이 축구스님 못잖게 진짜 뺨칠 모방의 실력자는 동서고금에 많다.반드시 예술·학술작품을 주변해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일상사에도 있다.미인 서시가 가슴앓이로 낯을 찡그리는 것인데 그것이 예뻐보인 추녀가 자신도 그러면 예뻐 보일까 하여 찡그렸다는 엉터리 모방 효빈도 있긴 하지만.모방은 그렇게 어느 형태로건 사람사회에서 없어지진 않을 것이다.또 그러는 한 어떤 유형의 어느만큼의 모방이냐 하는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시비의 대상으로 되는 것이리라.

서시를 본뜬 추녀의 모방은 웃음거리는 될지언정 시비거리로는 되지 않는다.문제로 되는 것은 창의가 곁들였으면서 명예와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린 것에 대한 모방일 때다.지적재산권 주장도 그래서 나온다.엄밀하게 따져보자면 모방하고 모방 당하는 세상 아니냐 싶기도 하지만 정신세계의 모방을 그리 가볍게만 볼일은 또 아니다.창의와 개발이 생명인 것이니 말이다.

우리텔레비전 프로가 일본의 구성형태를 본뜬다는 말은 어제오늘에 나온게 아니다.그런데 최근 일본의 한 텔레비전이『흉내 내주어 고맙다』고 이죽거리면서 모방의 장면들을 비쳤다고 한다.하지만 이같은 텔레비전 프로만 창피한건 아니다.저질만화에서부터 교과서의 표현에 이르기까지 모방의 폭은 넓다.그걸 못벗을때 그들의 모멸의 눈길에서 벗어나기도 어려울 것이다.
1994-03-02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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