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훼리」는 표기로 충돌했다(박갑천칼럼)

「페리­훼리」는 표기로 충돌했다(박갑천칼럼)

박갑천 기자 기자
입력 1993-10-20 00:00
수정 1993-10-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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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달라져 있지만 20∼30년전의 신문외래어표기는 「전국시대」그것이었다.하나의 낱말을 두고 이신문에서는 이렇게 쓰고 저신문에서는 저렇게 쓰는가 하면 이신문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쓰기까지 했다.그랬으니 새로운 사람이름이나 땅이름이 외신을 타게되면 혼란은 한참 계속될밖에 없었다.옛소련의 지도자로 흐루시초프가 등장했을 때도 그이름은 흐루쉬쵸프에서 흐루슈체프에 이르기까지 열가지도 넘게 오랫동안 표기되던 것임을 기억한다.

70년대 후반 들면서 신문들은 통일에의 길을 찾아나선다.한글학회의 「외래어표기법 통일안」을 뼈대로 하는 자체의 표기기준을 세우고서 표기례들을 정해나간 움직임이 그것이다.이는 교과서등의 표기에 준용되는 문교부의 「편수자료」와는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이기도 했다.이에 자극을 받은 것이 문교부였다.날마다 국민들 눈앞에 펼쳐지는 신문의 표기와 교육용의 교과서가 그표기를 달리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아래 언론계와 손잡고 새표기법을 마련하기에 이른다.그것이 85년말 문교부고시로 발표된 「외래어표기법」이다.

그후 신문도 이 새로운 표기법에 의한 국어연구소의 표기례에 좇는등 지난날과 같은 혼란에서는 벗어나고 있다.그런데 이번 부안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이름표기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준다.「페리」와 「훼리」의 두가지 표기가 그것이다.Ferry[feri]가 원어임은 아는 일이지만〔f〕를 「후」로 생각하는 일반적 통념과 「ㅍ」으로 정한 표기원칙의 대결때문에 빚어진 일이다.침몰선에도 선명하게 쓰여있는 홀이름씨(고유명사)「훼리」는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과 「잘못된 것」은 홀이름씨라도 고쳐 적어야 한다는 생각이 부딪친 셈이다.시일이 흐르면서 차츰 「훼리」쪽으로 기우는 흐름인데 끝까지 「페리」를 지키는 신문도 있다.

홀이름씨와 표기원칙 사이의 문제는 「페리­훼리」에 국한되는게 아니다.둘러보자면 수없이 많다.「피카데리극장」은 「피커딜리극장」으로 바꾸어야 할것이냐 말것이냐,「한국스레트」라는데서 만들어내는 제품은 「스레트」라야 옳은것이냐 「슬레이트」라야 옳은것이냐,「동양나이롱」의 제품은 「나이롱」이냐 「나일론」이냐… 등등.「선동렬」선수가 자기운동복에 「선동열」이라 달고 있으니까 신문도 덩달아 「선동열」로 표기하는 「홀이름씨 존중」을 과연 어떻게 생각해야 할것인지.

상호나 상품에서 아파트이름에 이르기까지,허가과정에 표기법 심사를 반드시 끼워넣어야 한다.그렇게 함으로써 처음부터 옳은 회사이름·간판이름·상품이름을 갖게 해주어야겠다.홀이름씨라 하여 국어의 표기체계를 흔들어야할 권리가 주어져 있는 것은 아니잖은가.<서울신문 논설위원>

1993-10-20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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