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부정의 충격이 온국민을 암담한 실의에 빠뜨리고 있다.웬만한 시간과 노력으로는 회생이 어려워 보이는 충격이다.부정조직은 전사학을 상대로 풀 해왔고 「부정」의 감각조차 마비된채 대학 알선의 사설서비스기구 쯤으로 횡행해온 형국이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할지 모를 지경이다.더욱 절망스러운 것은,이런 현상이 사학이 안고 있는 근원적인 문제에서 비롯하므로 뿌리뽑아 소탕하기가 매우 비관적이라는 사실이다.
○입시부정 질곡벗어나는 기회
사학재정의 불실이 해결되지 않고는 어설피 건드려봐야 말기증장 암환자의 환부에 메스만 댔다 덮는 형국이 되고 말 형편이다.그러나 그 모든 암담함을 극복하고 이번에 만은 이 해묵고 질긴 부조리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그런 뜻에서 이번 사태는 입시부정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생적인 집단위기의식의 발로로도 해석된다.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시기에 터진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기때문이다.치유되어야할 한국형 고질의 대명사격인 것을 방치한채 우리는 개혁을 운위할수 없다.이번만은엉거주춤하고 즉흥적인 일과성 대안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기여입학제」부터 서둘러 논의되는 듯한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선다.분명히 말하지만 기여입학제는 사학의 정상화를 위한 종합적인 대안 중의 하나일뿐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또한 아직도 유효성만큼 그 부작용이 우려되는 매우 조심스런 방안이기도 하다.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고 성공을 위해 갖춰져야할 여건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부정의 고리가 완전무결하게 끊겨야 한다.현재형은 물론 과거형에서 미래형의 부정 모두가 병든몸의 지체를 절단하는 용기로 도려내지는 작업이,충분하고도 신뢰감들게 이뤄지지 않으면 마치 잠복형 전염균을 놔둔채 외상을 치유하는 것같은 결과를 부를 뿐이다.이런 작업이 실효를 거두려면 국가의 충분하고도 절대적인 기능이 사학에 대한 지원이나 감독에 미쳐야 한다.
○기부금아닌 「기여」정신 살려야
우리나라처럼 사학의 국민교육담당기능이 공교육규모를 훨씬 앞지르는 경우에는 사학에 대한 국고의 지원이 지금처럼 빈약해서는 할말이 없어진다.예산의 특별운용으로라도 다만 얼마만큼이라도 지원비율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한다.지원폭이 늘어나면 감독기능도 강화될 수 있다.위기에 처해 허우적거리는 사학을 바라보면서 도움도 제대로 못주는 처지에서는 웬만한 부정은 눈감아주게 된다.그런 과정에서 관권불조이가 개입되고 가족형 부정의 유형도 잉태되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전제될 일은 대학의 자율능력의 신장이다.모집에서 졸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학사기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능력이 퇴영된 상태에 있는 것이 우리의 대학이기도 하다.간섭이 아닌 보조의 형태로 홀로서기의 훈련이 쌓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교육당국이 엄격하게 진행시켜야 할 일은 대학들이 학사운영과 재정을 상장된 기업처럼 공개해서 운영하도록 촉구하고 감독하는 일이다.이런 전제가 만족되지 않고는 기여입학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도 어렵고 잘못하다가는 또 다른 형태의 「합법적 부정」을 만드는 결과를 부를지도 모른다.
○대학·사회가공인하는 제도를
우선 이 제도를 「기부금」으로 하지 않고 「기여」라고 부르게 한 뜻에서부터 접근해보는 일도 중요하다.그것은 이 제도가 단순히 「돈」으로 입학권을 살수 있게 한다는 뜻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게 하기위함이다.우수한 능력으로 「기여」할 수도 있고 재정적 능력으로도 「기여」할 수있다는 뜻이 된다.호주같은 나라가 하듯이 한 일터에서 바친 일정기간의 공헌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 성숙시키는 수단으로 정규학업을 이어가기 바라는 보통시민에게 기회를 주는 방법같은 것도 차츰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사회를 심도있고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인력의 양성을 위해 대학은 끊임없이 기여해야하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의 기여입학제도의 실시를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 있음도 밝혀둔다.첫째 이 제도는 「정원」을 침범해서도 안되고 정규강의에 부담이 되어서도 안된다.자기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의 자리와 환경을 「기여」가 침식하거나 방해하는 일을 일반국민의 정서는 용납하지 못한다.그런 갈등요인을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또한 일정수준의 수학능력이 유지되도록 납득할만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그리고 기여입학의 「넓은 문」이 졸업의「좁은 문」을 절대로 넓힐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또한 기여입학생의 인권이 수학과정에서 흠으로 노출되는 일에 대한 보완도 유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기여입학에 의한 재원이 교수 인건비나 대학운영의 경상비로 쓰이는 일은 안된다.장학기금이나 교수를 위한 연구기금 또는 대학의 특수발전기금으로만 쓰이도록 엄격히 관리되어야 한다.이모든 기능을 맡을수 있도록 대학사회에서 공인받을 수 있는 기구가 설치되는 일도 중요하다.대학 교육협의회안에 그런 기구를 마련하는 구상은 타당해보인다.이런 모든 조건과 여건을 만족시키고 성숙시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참담한 현실에서 희망의 미래로 탈출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라는 그런 각오와 결연함으로 이 국면을 벗어나가기 바란다.
○입시부정 질곡벗어나는 기회
사학재정의 불실이 해결되지 않고는 어설피 건드려봐야 말기증장 암환자의 환부에 메스만 댔다 덮는 형국이 되고 말 형편이다.그러나 그 모든 암담함을 극복하고 이번에 만은 이 해묵고 질긴 부조리에서 우리가 벗어나지 않으면 안된다.그런 뜻에서 이번 사태는 입시부정의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자생적인 집단위기의식의 발로로도 해석된다.더 이상 유예할 수 없는 시기에 터진 필연적 결과이기도 하기때문이다.치유되어야할 한국형 고질의 대명사격인 것을 방치한채 우리는 개혁을 운위할수 없다.이번만은엉거주춤하고 즉흥적인 일과성 대안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렇기는 하지만 「기여입학제」부터 서둘러 논의되는 듯한 현상에 대해서는 우려가 앞선다.분명히 말하지만 기여입학제는 사학의 정상화를 위한 종합적인 대안 중의 하나일뿐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또한 아직도 유효성만큼 그 부작용이 우려되는 매우 조심스런 방안이기도 하다.이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되어야 할 조건이 있고 성공을 위해 갖춰져야할 여건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부정의 고리가 완전무결하게 끊겨야 한다.현재형은 물론 과거형에서 미래형의 부정 모두가 병든몸의 지체를 절단하는 용기로 도려내지는 작업이,충분하고도 신뢰감들게 이뤄지지 않으면 마치 잠복형 전염균을 놔둔채 외상을 치유하는 것같은 결과를 부를 뿐이다.이런 작업이 실효를 거두려면 국가의 충분하고도 절대적인 기능이 사학에 대한 지원이나 감독에 미쳐야 한다.
○기부금아닌 「기여」정신 살려야
우리나라처럼 사학의 국민교육담당기능이 공교육규모를 훨씬 앞지르는 경우에는 사학에 대한 국고의 지원이 지금처럼 빈약해서는 할말이 없어진다.예산의 특별운용으로라도 다만 얼마만큼이라도 지원비율을 높이는 노력을 해야한다.지원폭이 늘어나면 감독기능도 강화될 수 있다.위기에 처해 허우적거리는 사학을 바라보면서 도움도 제대로 못주는 처지에서는 웬만한 부정은 눈감아주게 된다.그런 과정에서 관권불조이가 개입되고 가족형 부정의 유형도 잉태되게 마련이다.
다음으로 전제될 일은 대학의 자율능력의 신장이다.모집에서 졸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의 학사기능을 책임지고 운영하는 능력이 퇴영된 상태에 있는 것이 우리의 대학이기도 하다.간섭이 아닌 보조의 형태로 홀로서기의 훈련이 쌓이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교육당국이 엄격하게 진행시켜야 할 일은 대학들이 학사운영과 재정을 상장된 기업처럼 공개해서 운영하도록 촉구하고 감독하는 일이다.이런 전제가 만족되지 않고는 기여입학제도에 대한 국민적인 합의를 도출하기도 어렵고 잘못하다가는 또 다른 형태의 「합법적 부정」을 만드는 결과를 부를지도 모른다.
○대학·사회가공인하는 제도를
우선 이 제도를 「기부금」으로 하지 않고 「기여」라고 부르게 한 뜻에서부터 접근해보는 일도 중요하다.그것은 이 제도가 단순히 「돈」으로 입학권을 살수 있게 한다는 뜻을 넘어서는 의미를 지니게 하기위함이다.우수한 능력으로 「기여」할 수도 있고 재정적 능력으로도 「기여」할 수있다는 뜻이 된다.호주같은 나라가 하듯이 한 일터에서 바친 일정기간의 공헌과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고 성숙시키는 수단으로 정규학업을 이어가기 바라는 보통시민에게 기회를 주는 방법같은 것도 차츰 개발될 수 있을 것이다.사회를 심도있고 다양하게 발전시키는 인력의 양성을 위해 대학은 끊임없이 기여해야하기 때문이다.
좁은 의미의 기여입학제도의 실시를 위해서도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이 있음도 밝혀둔다.첫째 이 제도는 「정원」을 침범해서도 안되고 정규강의에 부담이 되어서도 안된다.자기능력으로 들어갈 수 있는 학생의 자리와 환경을 「기여」가 침식하거나 방해하는 일을 일반국민의 정서는 용납하지 못한다.그런 갈등요인을 만들어서는 안될 것이다.또한 일정수준의 수학능력이 유지되도록 납득할만한 절차가 있어야 한다.그리고 기여입학의 「넓은 문」이 졸업의「좁은 문」을 절대로 넓힐 수 없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또한 기여입학생의 인권이 수학과정에서 흠으로 노출되는 일에 대한 보완도 유념해야 할 일일 것이다.
기여입학에 의한 재원이 교수 인건비나 대학운영의 경상비로 쓰이는 일은 안된다.장학기금이나 교수를 위한 연구기금 또는 대학의 특수발전기금으로만 쓰이도록 엄격히 관리되어야 한다.이모든 기능을 맡을수 있도록 대학사회에서 공인받을 수 있는 기구가 설치되는 일도 중요하다.대학 교육협의회안에 그런 기구를 마련하는 구상은 타당해보인다.이런 모든 조건과 여건을 만족시키고 성숙시키는 노력으로부터 출발하여 이 참담한 현실에서 희망의 미래로 탈출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우리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진 기회라는 그런 각오와 결연함으로 이 국면을 벗어나가기 바란다.
1993-02-11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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