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해와 나눔의 성탄을(사설)

화해와 나눔의 성탄을(사설)

입력 1992-12-24 00:00
수정 1992-1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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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의 우리는 위대했다. 큰 화해와 용서의 계절을 이룩해냈다.지면서 이기는 패자의 승리도 실천하고,관용과 겸허함으로 상처를 감싸는 승자의 아량도 맛보았다.

오늘은 12월24일 성탄전야.우리에게 특별한 희망과 기대를 느끼게 한다.이날이 지닌 나눔과 사랑의 의미를 더욱 생각해보게 하는 날이다.김수환 추기경의 성탄메시지가 지적하듯 이날은 「가난한 이,우는 이,외로운 이,병고에 신음하는 이」에게 용기를 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선 오늘 우리가 함께 한 승리의 기쁨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도 그런 노력은 긴요하다.우리 조상들은 가뭄이 들면 궁궐에 사는 궁녀를 세속으로 돌려보내는 일까지 했다고 한다.모든 맺힌 한을 풀어야 하늘의 노여움을 풀수 있다는 생각때문이었다.사회란 하나의 인체와 같은 유기체다.어느 한쪽이 괴롭고 고달프면 사회전체가 건강할 수 없다.그늘진 곳 소외된 곳을 두어둔 상태로는 사회가 건전한 발전을 이룰수가 없는 것이다.

대통령선거라는 엄청난 일을 치르느라고 사람들은 마음이 갈라졌었고 눈앞의 현실이 다급하여 불우한 이웃을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그래서 불우시설이 성탄절을 맞는 오늘까지 썰렁하고 찾는 이도 없다고 한다.우리는 본디 마음이 따뜻한 민족이다.아무리 삶이 어렵고 빠듯해도 명절이 되면 이웃과 고통을 나누고 다독이는 온정을 지닌 민족이다.그것이 오늘까지 우리를 이어오게 한 정신적 자산이기도 하다.우리가 원천적으로 지녀온 이런 정서를 되살려 춥고 가난한 이웃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것이 오늘 바로 할일이다.

원칙적으로는 국가사회가 이런 소외된 계층을 우선적으로 돌보아야 한다.경제발전의 뒤안에서 어쩔수 없이 생긴 이들에 대한 배려와 분배의 정의를 국가가 충분히 책임지는 시대가 되어야 우리도 진정한 선진사회가 이루어진다.국가가 그런 의지를 갖는 것이 정의로운 시대를 위한 의지의 표명일 수 있는 것이다.신한국은 그런 정신적 기반을 지니고 거듭날 수 있다.

또한 사회가 근검하고 절도를 지켜야 청소년도 그것을 따른다.어른들이 행하지 않고 아이들에게만 행하게 해서 이뤄지는 일이란 없다.긴 겨울방학과 함께 연휴가 이어지는 이 계절은 우리의 자녀들이 가장 들뜨기 쉬운 계절이기도 하다.그들을 위해서도 경건하고 이웃을 생각하며 보내는 성탄과 연말연시는 중요하다.모든 이의 뜻깊은 성탄을 기원한다.
1992-12-24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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