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성당에 나간지가 23년이나 되었다.뒤돌아보면 엉터리 신자가 아니었나 싶다.처음엔 기도할줄을 몰라 어린아이처럼 맨날 조르기만 했다.그러다가 주지 않으면 원망도 했다.욕도 했다.때로는 너무 힘이 들때에 기도에 대한 답이 없으면 하느님을 버리기도 했다.판단도 하고 의심도 하고 쪼개기도 하고 내맘대로였다.
얼마나 미숙한 신앙생활을 했는가.알고보니 신앙이란 그런게 아니었다.두가지 차원을 살아야 했다.하나는 하느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요 다른 차원은 하느님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둘다 생활속에,인격속에 담아내려면 보통으로 노력해서는 표도 안났다.날마다 매 순간마다 성찰하고 또 성찰해야만 했다.
하느님의 성품을 닮으려면 착함과 어짐,인내,용기,겸손,담대함,온유함…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덕목을 배워나가야 하니까 쉽지않은 일이었다.요즘은 한꺼번에 다 익히기가 어려워 시기를 정해놓고 특별히 그 덕목을 몸에 지니려고 해본다.그러자니 자연히 기도도 『주님! 제게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요』라고 바치게 된다.
그보다도 어쩌면 더 힘든 일은 하느님의 사상을 실천하는 길이다.정의와 사랑을 현실속에 실현한다는 것은 자기부정을 통해 꼭 행동으로 해야되기 때문에 더더욱 정성이 들어가야 된다.얼렁뚱땅 받아들이거나 지나갈 일이 아니다.매순간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싶다.
신앙을 잘못 받아들여서 여기저기서 탈이 많이 나는 것 같다.상당히 걱정도 되고 사회분위기를 흐려놓고 있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신앙생활을 하려면 철저하게 자기를 뒤돌아 봐야만 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자각해야만 한다.
하느님의 성품을 닮고 그분의 사상을 실천하는 길은 오히려 고통의 길이다.때로는 피해가고 싶은 연약한 마음도 생긴다.그렇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자기 빛깔과 소리를 내고 살아가려면 헌신과 애정이 필요하다.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얼마나 미숙한 신앙생활을 했는가.알고보니 신앙이란 그런게 아니었다.두가지 차원을 살아야 했다.하나는 하느님의 성품을 닮는 것이요 다른 차원은 하느님의 사상을 실천으로 옮기는 일이다.둘다 생활속에,인격속에 담아내려면 보통으로 노력해서는 표도 안났다.날마다 매 순간마다 성찰하고 또 성찰해야만 했다.
하느님의 성품을 닮으려면 착함과 어짐,인내,용기,겸손,담대함,온유함…열거하자면 끝도 없는 덕목을 배워나가야 하니까 쉽지않은 일이었다.요즘은 한꺼번에 다 익히기가 어려워 시기를 정해놓고 특별히 그 덕목을 몸에 지니려고 해본다.그러자니 자연히 기도도 『주님! 제게 인내할 수 있는 힘을 주십시요』라고 바치게 된다.
그보다도 어쩌면 더 힘든 일은 하느님의 사상을 실천하는 길이다.정의와 사랑을 현실속에 실현한다는 것은 자기부정을 통해 꼭 행동으로 해야되기 때문에 더더욱 정성이 들어가야 된다.얼렁뚱땅 받아들이거나 지나갈 일이 아니다.매순간 지혜와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닌가싶다.
신앙을 잘못 받아들여서 여기저기서 탈이 많이 나는 것 같다.상당히 걱정도 되고 사회분위기를 흐려놓고 있어 가슴이 답답하기도 하다.신앙생활을 하려면 철저하게 자기를 뒤돌아 봐야만 한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자각해야만 한다.
하느님의 성품을 닮고 그분의 사상을 실천하는 길은 오히려 고통의 길이다.때로는 피해가고 싶은 연약한 마음도 생긴다.그렇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자기 빛깔과 소리를 내고 살아가려면 헌신과 애정이 필요하다.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대한 책임이기도 하다.
1992-09-04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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