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자 표기의 「남북통일」(사설)

로마자 표기의 「남북통일」(사설)

입력 1992-06-19 00:00
수정 1992-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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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로마자 표기(한글의 라틴문자 전자법)에 대한 남북한 단일안이 마련되었다.대립된 견해로 해서 7년동안 끌어온 끝에 이루어낸 「통일」이라는 점에서 우선 평가되어야 할 성과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하겠다.

그렇기는 하지만 찜찜해지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이 작업이 학문적 동기에서 출발된 것이 아니라 국제간 통신이라는 현실적 필요성에 따르는 국제규격 제정사업의 일환으로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따라서 이 일의 추진도 국제표준화기구(ISO:기술분과위원회 46)가 84년 프랑스 표준협회에 작업을 위촉한 때로부터 시작된다.또 그런만큼 남북의 어학자가 대좌한 것이 아니라 남쪽의 주체는 공진청이며 북쪽의 주체는 규격위원회이다.회의장도 남북의 어느 곳이 아니라 모스크바∼파리∼코펜하겐 등이었다.

87년 모스크바에서 회동한 이래 91년의 코펜하겐 회의에 이르기까지 이견을 많이 좁혀오긴 했다.그러면서도 중요한 곳에서 차이를 보이다가 이번 파리회의에서 단일안에의 타결을 보게 된 것이다.자음은 북쪽안,모음은 남쪽안을 수용한결과이다.빨리 타결지어야 할 상황속에 있었다고도 할 것이다.그러나 한글 자모와 로마자를 대응시켜 표기하는 전자법으로서의 이 통일안은 기계화에의 비위를 맞추는 ISO의 원칙에 따르는 것임으로 해서 학문적으로까지 이론의 여지를 없애는 것은 아니다.또 우리의 경우 88올림픽을 치르면서 외국인들에게 편의를 준답시고 발음쪽을 중시하는 전사법 도로표지판 등을 달아놓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생각하자면 이 일에서도 분단의 아픔은 가슴에 와 닿는다.로마자를 쓰지 않는 나라들로 하여금 로마자로 표기하는 방법을 표준화시켜 세계 모든 나라에 편리를 제공하자는 데에 이 일의 뜻은 있다.그러므로 일본같은 나라의 경우 자기들이 국내에서 쓰는 로마자 표기법을 그대로 제출하면 고만이다.그렇건만 우리는 남과 북의 아귀부터 먼저 맞추는 고비를 거쳐야 했다.그러는데 장장 7년이 걸린 것이다.

공진청과 규격위원회가 주체였다고는 해도 학계의 자문이 없을 수는 없다.북의 경우는 말할 것 없고 우리의 경우도 국어심의회의 의견을 듣는 과정이 있긴 했다.그렇다 해도 이번의 이 남북통일안이 그대로 우리의 로마자 표기법으로 이어져야 하느냐 않느냐에 대한 논의는 일단 거쳐야 할 것이다.국내 표기법에는 영향이 없다는 말도 나오지만 국내용 따로,국제용 따로 식으로 이원화해서 쓰는 것도 불합리한 터이므로 수용해서 일원화시키는 것이 편리하다고는 하겠으나 그럴 때는 또 그로 인한 낭비와 혼란도 어느 기간 적지않이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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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한글의 로마자 표기 합의를 보면서 갈수록 이질화해 가는 남과 북의 언어현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보게 된다.말이 같아서 한겨레라면 말이 달라지면 달라진 그만큼 남이 된다고 할 수도 있다.그렇건만 달라져 간다.그들이 만들어낸 말 가운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대단히 많다.똑같은 사물을 두고 달리 표현하기도 한다.국어연구원 같은 곳에서 남북언어통일 사업을 펼친다는 소식도 전해지지만 민간끼리의 교류가 잦아지고 학자들이 머리 맞대고 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그걸 서둘러야겠다.
1992-06-1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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