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은 장애자의 날이다.
바쁘고 눈부시게 돌아가는 제각기의 자기앞의 삶 때문에 평소에는 깜깜하게 잊고 지내는 「장애인문제」를 이날만이라도 기억하여 개선하는 노력이나 관심을 갖는 일은 뜻이 깊다.
우리나라처럼 장애인에 대해서 배려가 없고 우리처럼 장애인의 삶을 향상시키는 노력에 인색한 나라도 드물다.비슷한 수준의 국민소득을 가진 비슷한 정도의 중진국 중에서도 부끄러울 만큼 뒤진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도로의 턱이 높아 휠체어를 끌고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길이 도시의 대부분이고 육교가 아니면 지나갈 수 없는 길이 수두룩해서 장애자가 「갈수없는 곳」이 너무 많다.최근에도 그런 길에서 도로를 건너다가 장애자 한사람이 참변을 당했다.건물·공공시설·공원·교통기관이 모두 장애자를 위해 아무 시설도 안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보다 더욱 장애자를 괴롭히는 것은 「성한 사람들」의 냉혹한 「장애자관」이다.무관심하고 비정하여 장애자의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좌절시킨다.어쩌다가 해놓은 장애자용 시설이나 좌석을 멀쩡한 사람들이 차지해버리고 길에서 장애자와 부딪쳐도 길을 내주거나 도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난폭하게 밀치거나 뒤로 제치고 가버린다.시민의 이런 비정함은 우리의 도덕적 황폐함의 척도라고 할수 있다.
시민의 이같은 황폐성이 결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장애자시설을 거부하는 태도다.서울의 마장동에 지으려던 장애인복지관이나 양천구 신정동에 세워진 장애인 자립작업장이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착공도 못하거나 지어진 뒤에 입주도 못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장애인 시설이 있으면 집값이 떨어지고 자녀교육에 해롭다는 것이 반대이유라고 한다.
그런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를 감동시킨 경우가 생겼다.서울 중구 필동에 장애인자립작업장이 마련되어 17일에 이미 개장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이곳의 경우 주변 주민들이 반대는 커녕 앞다퉈 도움과 지원을 하며 기계도 기증하고 일거리도 제공했다고 한다.같은 시민이라도 이렇게 성숙하고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게된다.
장애인시설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리라는걱정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소견없는 이기주의적 발상인가를 필동주민들의 덕행으로 입증시켜주기를 염원한다.특히 장애인의 존재가 자녀교육에 해롭다는 생각은 매우 천박한 부모의 근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시련속에서도 꿋꿋이 극복하며 사는 장애인의 삶은,건강한 어린이에게 커다란 교훈이 되어 준다.그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신의 축복이기도 하다.장애인 시설이 이웃에 있음으로써 그런 기회를 가까이 부를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은 우리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할 부양가족이다.그러므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방법이다.장애인 정책도 그런 원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장애인의 날」은 그모든 것을 반성하고 되새기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바쁘고 눈부시게 돌아가는 제각기의 자기앞의 삶 때문에 평소에는 깜깜하게 잊고 지내는 「장애인문제」를 이날만이라도 기억하여 개선하는 노력이나 관심을 갖는 일은 뜻이 깊다.
우리나라처럼 장애인에 대해서 배려가 없고 우리처럼 장애인의 삶을 향상시키는 노력에 인색한 나라도 드물다.비슷한 수준의 국민소득을 가진 비슷한 정도의 중진국 중에서도 부끄러울 만큼 뒤진 것이 우리의 실정이다.도로의 턱이 높아 휠체어를 끌고 도저히 건너갈 수 없는 길이 도시의 대부분이고 육교가 아니면 지나갈 수 없는 길이 수두룩해서 장애자가 「갈수없는 곳」이 너무 많다.최근에도 그런 길에서 도로를 건너다가 장애자 한사람이 참변을 당했다.건물·공공시설·공원·교통기관이 모두 장애자를 위해 아무 시설도 안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실보다 더욱 장애자를 괴롭히는 것은 「성한 사람들」의 냉혹한 「장애자관」이다.무관심하고 비정하여 장애자의 삶의 의욕을 송두리째 좌절시킨다.어쩌다가 해놓은 장애자용 시설이나 좌석을 멀쩡한 사람들이 차지해버리고 길에서 장애자와 부딪쳐도 길을 내주거나 도울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은 물론 난폭하게 밀치거나 뒤로 제치고 가버린다.시민의 이런 비정함은 우리의 도덕적 황폐함의 척도라고 할수 있다.
시민의 이같은 황폐성이 결정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장애자시설을 거부하는 태도다.서울의 마장동에 지으려던 장애인복지관이나 양천구 신정동에 세워진 장애인 자립작업장이 주민들의 완강한 반대로 착공도 못하거나 지어진 뒤에 입주도 못하는 사태를 빚고 말았다.장애인 시설이 있으면 집값이 떨어지고 자녀교육에 해롭다는 것이 반대이유라고 한다.
그런가운데 처음으로 우리를 감동시킨 경우가 생겼다.서울 중구 필동에 장애인자립작업장이 마련되어 17일에 이미 개장에 들어갔다는 소식이다.이곳의 경우 주변 주민들이 반대는 커녕 앞다퉈 도움과 지원을 하며 기계도 기증하고 일거리도 제공했다고 한다.같은 시민이라도 이렇게 성숙하고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받게된다.
장애인시설때문에 집값이 떨어지리라는걱정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고 소견없는 이기주의적 발상인가를 필동주민들의 덕행으로 입증시켜주기를 염원한다.특히 장애인의 존재가 자녀교육에 해롭다는 생각은 매우 천박한 부모의 근거없는 걱정이라는 것을 단언할 수 있다.시련속에서도 꿋꿋이 극복하며 사는 장애인의 삶은,건강한 어린이에게 커다란 교훈이 되어 준다.그들에게 사랑과 나눔을 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면 그것은 신의 축복이기도 하다.장애인 시설이 이웃에 있음으로써 그런 기회를 가까이 부를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장애인은 우리가 공동으로 부담해야 할 부양가족이다.그러므로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 함께 살아가는 것이 가장 슬기로운 방법이다.장애인 정책도 그런 원리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장애인의 날」은 그모든 것을 반성하고 되새기는 날이어야 할 것이다.
1992-04-2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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