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부부버스운전자 강병천·배문순씨 “인간승리”/남편 사업 실패하자 아내도 나서/개미저축 4년끝 이젠 승용차도/운전중 마주칠땐 서로가 “빵빵…” 애정교신도
『새해에는 더욱 두터워진 우리부부의 사랑으로 승객들을 보다 따뜻이 맞으렵니다』
우리나라 첫 부부버스운전사인 강병천씨(41)와 배문순씨(37).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서울승합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강씨 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잉꼬부부」이다.
남편 강씨는 서울승합 568번 버스를 몰고 명일동에서 경동시장으로 가는 노선을 뛰고 있고 부인 배씨는 자회사인 삼선 813번으로 고덕동에서 가락시장까지 다니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근무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서로 핸들을 잡고 마주쳤을 때.
서로의 노선이 교차하는 잠실∼명일동구간에서 하루 2∼3차례 만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보기가 무섭게 경적을 울려대고 전조등을 켰다껐다 신호를 보낸다.
대개는 강씨가 먼저 부인이 모는 버스옆에 자기차를 붙여 대고 눈을 껌벅여 윙크를 보내고는 『아이 러브 유!』라고 큰소리로외쳐댄다.
이들의 버스를 탔던 승객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게 마련이다.
이들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강씨가 서울승합에 입사한 지난 81년부터.
그때까지 택시 운전사로 일하던 그는 큰 차량을 몰고 싶어 이 버스회사로 옮겼다.그때 배씨는 이회사 안내양의 교양주임(사감)으로 있었다.
이들은 처음 한 직장동료로서 그저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그러다 배씨의 쾌활하고 활동적인 성격이 마음에 든 강씨는 『아내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다.
그런데 배씨는 운전사와는 결혼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강씨를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러나 강씨의 성실하고 끈질긴 프로포즈에 감동,마침내 83년9월 결혼에 골인했다.
호사다마라할까,그러던 어느날 강씨는 『방범방사기(가스총)사업이 전망이 밝다』는 친구의 권유와 『평생 핸들을 잡을 수는 없는게 아니냐』는 생각에 개인택시 2대를 5천만원에 처분,사업가로의 변신을 꾀했다.
그러나 2년도 안돼 빚더미만 짊어지고 파산하고 말았다.
빚독촉과 가난,이런저런 설움등을참을 길없어 투신자살을 하기로 작정하고 아차산으로 올라가 서로 부둥켜안고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죽을 각오로 열심히 일해 다시 살아보자』는 새로운 각오로 이를 악물고 산을 내려왔다.
강씨는 바로 서울승합에 재입사했고 배씨는 기사가 되기위해 운전연습에 열중,86년 대형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면허를 딴 그녀는 남편을 따라 서울승합에 입사원서를 냈다.회사는 그러나 여자에게 버스운전은 무리라는 이유로 입사를 거절했다.그녀는 이에 아랑곳하지않고 6개월동안이나 매일같이 출근하다시피 회사에 찾아가 취업을 졸라댔다.결국 회사측은 41일 동안이라는 사내 최장기연수를 조건으로 입사를 허락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부버스운전사가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한달 수입 1백40여만원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두 저축했다.
아침식사는 굶고 점심,저녁은 강씨 형들집을 찾아다니며 신세졌다.
그러기를 4년.마침내 생활이 눈이 띄게 달라졌다.
그동안 정붙이고 살아온 보증금 1백만원,월세 6만원짜리 고덕동의 아파트단칸방을 떠나 강동구암사동에 24평짜리 어엿한 아파트를 장만했다.
1백60만원짜리 중고승용차도 구입했다.
그리고 그동안 동료들로부터 「커피한잔 살 줄 모르는 노랑이 구두쇠」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응어리들을 풀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아픔을 회상하면서 동료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집으로 초대해 식사등을 대접하고 있다.
강씨부부는 무엇보다 그 어려웠던 시절 일할 터전을 마련해준 회사에 늘 감사하고 있다.<김민수기자>
『새해에는 더욱 두터워진 우리부부의 사랑으로 승객들을 보다 따뜻이 맞으렵니다』
우리나라 첫 부부버스운전사인 강병천씨(41)와 배문순씨(37).
서울 강동구 고덕동에 있는 서울승합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강씨 부부는 금실이 좋기로 소문난 「잉꼬부부」이다.
남편 강씨는 서울승합 568번 버스를 몰고 명일동에서 경동시장으로 가는 노선을 뛰고 있고 부인 배씨는 자회사인 삼선 813번으로 고덕동에서 가락시장까지 다니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근무중 가장 즐거운 시간은 서로 핸들을 잡고 마주쳤을 때.
서로의 노선이 교차하는 잠실∼명일동구간에서 하루 2∼3차례 만나게 된다.
서로가 서로를 보기가 무섭게 경적을 울려대고 전조등을 켰다껐다 신호를 보낸다.
대개는 강씨가 먼저 부인이 모는 버스옆에 자기차를 붙여 대고 눈을 껌벅여 윙크를 보내고는 『아이 러브 유!』라고 큰소리로외쳐댄다.
이들의 버스를 탔던 승객들은 이 광경을 보고는 한바탕 폭소를 터뜨리게 마련이다.
이들이 인연을 맺게 된 것은 강씨가 서울승합에 입사한 지난 81년부터.
그때까지 택시 운전사로 일하던 그는 큰 차량을 몰고 싶어 이 버스회사로 옮겼다.그때 배씨는 이회사 안내양의 교양주임(사감)으로 있었다.
이들은 처음 한 직장동료로서 그저 알고 지내는 정도였다.그러다 배씨의 쾌활하고 활동적인 성격이 마음에 든 강씨는 『아내로 삼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됐다.
그런데 배씨는 운전사와는 결혼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강씨를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러나 강씨의 성실하고 끈질긴 프로포즈에 감동,마침내 83년9월 결혼에 골인했다.
호사다마라할까,그러던 어느날 강씨는 『방범방사기(가스총)사업이 전망이 밝다』는 친구의 권유와 『평생 핸들을 잡을 수는 없는게 아니냐』는 생각에 개인택시 2대를 5천만원에 처분,사업가로의 변신을 꾀했다.
그러나 2년도 안돼 빚더미만 짊어지고 파산하고 말았다.
빚독촉과 가난,이런저런 설움등을참을 길없어 투신자살을 하기로 작정하고 아차산으로 올라가 서로 부둥켜안고 밤새 울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죽을 각오로 열심히 일해 다시 살아보자』는 새로운 각오로 이를 악물고 산을 내려왔다.
강씨는 바로 서울승합에 재입사했고 배씨는 기사가 되기위해 운전연습에 열중,86년 대형운전면허를 취득했다.
면허를 딴 그녀는 남편을 따라 서울승합에 입사원서를 냈다.회사는 그러나 여자에게 버스운전은 무리라는 이유로 입사를 거절했다.그녀는 이에 아랑곳하지않고 6개월동안이나 매일같이 출근하다시피 회사에 찾아가 취업을 졸라댔다.결국 회사측은 41일 동안이라는 사내 최장기연수를 조건으로 입사를 허락했다.
우리나라에서 부부버스운전사가 처음으로 탄생한 것이다.
이들은 한달 수입 1백40여만원을 한푼도 쓰지 않고 모두 저축했다.
아침식사는 굶고 점심,저녁은 강씨 형들집을 찾아다니며 신세졌다.
그러기를 4년.마침내 생활이 눈이 띄게 달라졌다.
그동안 정붙이고 살아온 보증금 1백만원,월세 6만원짜리 고덕동의 아파트단칸방을 떠나 강동구암사동에 24평짜리 어엿한 아파트를 장만했다.
1백60만원짜리 중고승용차도 구입했다.
그리고 그동안 동료들로부터 「커피한잔 살 줄 모르는 노랑이 구두쇠」라는 손가락질을 받았던 응어리들을 풀기 시작했다.
지난날의 아픔을 회상하면서 동료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집으로 초대해 식사등을 대접하고 있다.
강씨부부는 무엇보다 그 어려웠던 시절 일할 터전을 마련해준 회사에 늘 감사하고 있다.<김민수기자>
1992-01-06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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