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행정 쇄신” 겨냥한 「페놀문책」/환경처장관 전격경질의 안팎

“환경행정 쇄신” 겨냥한 「페놀문책」/환경처장관 전격경질의 안팎

이경형 기자 기자
입력 1991-04-26 00:00
수정 1991-04-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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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유출로 악화된 국민감정 고려/“책임추궁 해야”… 여당기류도 작용

지난 3월 두산전자의 낙동강상수원 페놀오염사건이 발생한 지 1개월 만에 다시 페놀누출사건이 발생하자 관계장관의 인책을 싸고 오락가락하던 문책인사가 결국 25일 단행됐다.

노태우 대통령은 이날 하오 환경처의 허남훈 장관·한수생 차관을 동시에 경질,후임에 권이혁 전 보사부 장관·한갑수 한국산업경제연구원장을 각각 임명했다고 이수정 청와대대변인이 발표.

○…청와대는 페놀누출사건이 재발함에 따라 대구지역을 비롯한 국민들의 여론이 비등하고 항위시위까지 벌어지자 관계장관의 문책을 23일부터 산발적으로 거론.

임명권자의 결심이 서지도 않은 상태에서 문책인사 관련보도가 나오자 청와대는 24일 하오 4시쯤 당국자의 입을 통해 『환경처 장관의 경질은 당분간 없을 것』이라는 노 대통령의 생각을 발표함으로써 문책인사는 없다는 쪽으로 일단 「교통정리」를 했던 것.

그러다가 만 하루도 안된 25일 하오 1시30분 이 청와대대변인은 장·차관 경질의 문책인사내용을기습(?) 발표해 기자들을 어리둥절케 했다.

이 대변인은 「대통령의 결심이 어떻게 하룻만에 바뀌었느냐」고 캐묻자 『24일 상오까지만 해도 사후대책이 급선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이날 하오와 저녁에 여러 군데의 의견을 듣고 종합판단한 결과 현시점에서 인책을 하기로 결심을 한 것』이라고 설명.

○…이에 앞서 정해창 대통령비서실장은 24일 상오 노 대통령에게 페놀누출사건을 보고했는데 이 자리에서 나온 대통령의 감을 토대로 24일 하오 청와대측은 이번 사건에 대한 인책이 없는 것으로 발표했던 것.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이날 하오부터 문책을 요구하는 비등한 여론동향을 보고받으면서 차제에 환경처 장관을 비중있는 인사로 교체함으로써 환경행정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 중요성을 제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25일 아침에 장·차관을 동시에 경질키로 결심을 굳혔다는 것.

노 대통령은 이날 상오 9시쯤 정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회의 도중에 인터폰으로 이날 상오 10시부터 예정된 김영준 감사원장의 1·4분기 감사원업무보고가 끝난 뒤 집무실로 오도록 지시.

이에 정 실장과 김영일 사정수석은 오는 11시쯤 김 감사원장이 나간 뒤 이번 페놀누출사건에 따른 관계장관 등의 문책과 관련한 소상한 보고와 함께 후임인사에 대한 자료도 품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의 정치적 인책문제와 관련,노 대통령의 생각이 「인책유보」에서 「인책단행」으로 급선회한 것은 청와대 참모들간의 상반된 견해 때문이라는 분석들.

청와대의 사정담당 쪽에서는 이번 사건이 터지자마자 『첫번 사건 때 대통령이 사후 수습이 화급하므로 인책을 유보한다고 한 이상 책임행정의 구현을 위해 이번에 관계장관에 대한 정치적인 책임을 묻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견지했던 것.

이에 반해 일부 참모들은 『이번 사건은 페놀저장탱크의 지상노출파이프 이음새가 파열된 것으로 일종의 돌발사고』라며 장관에 대한 인책을 할 만한 사안이 못된다는 의견을 개진.

이들은 또 『환경종합대책은 매우 복잡하고 기술적인 사항이 많은데 새로운 장관이 오면 업무파악에 많은 시간이 걸려 각종 대책추진의 속도가 떨어진다』는 점도 지적했다고.

청와대 참모들간의 초반에 상반된 견해들도 25일 아침 수석회의를 분기점으로 「경질」 쪽으로 기울었다고.

특히 이날 하오로 예정된 김영삼 민자당 대표위원의 주례당무보고시 「문책요구」의 당내분위기가 강도높게 전달될 것이라는 사전정보도 주효했을 것으로 추측.

○…권 신임 환경처 차관의 기용배경에 대해 청와대 당국자는 『서울대 총장과 문교·보사부 장관을 역임한 중후한 인물을 환경처 장관에 임명함으로써 내각내의 환경처의 위상을 끌어 올리고 환경행정의 중요성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특히 환경행정은 많은 부처들이 관계되므로 부처간의 협조체제 구축이 중요하다는 점도 감안된 것』이라고 설명.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한수생 차관은 한때 승진설까지 있었는데 어떻게 동반인책이 됐느냐』는 물음에 『이번 재누출사건은 장관의 정치적 책임 못지 않게 차관의 감독소홀 등 실무책임도 크다고 본 것』이라고 말하고 『장차관 동시경질은 환경문제에 대한 대통령의단호한 생각을 반영한 것』이라고 부연.

한편 환경행정과는 별 인연이 없는 한갑수 차관의 임명에 대해 이 관계자는 『수산청·농림수산부 국장을 여러번 거쳤고 한국산업경제연구원을 운영해오며 환경 등 산업발전 관련분야를 깊이 연구해 왔다』면서 『대통령의 남다른 신임이 두터운 것으로 안다』고 전언.

한 신임 차관은 노 대통령이 87년 대통령선거에 나설 당시 호남 출신으로 드물게 노 후보를 지원한 「보통사람의 모임」을 주도적으로 이끈 인물.

○…이날 하오 2시쯤 보도를 통해 처음으로 장차관경질 소식을 접한 환경처 직원들은 『이제야 환경처 일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라면서 대부분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

직원들은 『24일 저녁 2차 페놀누출사고가 난 뒤에도 장관경질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았는데 장관에 차관까지 바뀌어 산적한 현안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 일손을 놓고 허탈감에 빠져 있는 모습.

이날 임시국회가 열리면서 일찌감치 경질소식을 전해들은 허 전 환경처 장관은 이날 하오 2시쯤 기자실에 들러 『내가 그만두게 된 것은 정치적 책임이라지만 그 동안 밤잠을 설치면서 환경문제에 힘써 온 직원들이 고생 많이 했는데…』라면서 말끝을 흐리기도.

허 전 장관은 이어 『환경문제에 대한 30여 개의 중·장기계획과 이에 대한 세부실천계획이 이제야 하나 하나 진행될 순간이었다』면서 못내 아쉬워하기도.<이경형·유민 기자>
1991-04-26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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