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공을 불과 5개월 앞둔 경기 팔당대교 1백96m 붕괴사건은 지금 지자제선거와 낙동강오염 후속기사들에 묻혀 한쪽 구석으로 겨우 보도되고 있다. 하긴 건설구조물 붕괴사건도 그 규모가 이보다 큰 것이 많았으니까 상대적으로 충격의 크기도 달라질 수는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감각이 다 틀린 것이다. 팔당대교 붕괴는 명백히 따져 두어야 할 사건이고,아직도 이런 사고를 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취약점을 다시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사건이다.
지금이 어느때인데 우리는 이렇게 한심한가. 사고 당시 초속 15m의 강풍이 불었다고는 하지만 이 공사는 3년 이상이나 게속돼온 것이고 이제 마무리 3백여m의 교판콘크리트를 하고 있던 시점이다. 그러니 보통 강풍정도가 아니라 기상이변의 폭풍이 불어도 견디고 있을 만한 때에 있었다고 해야 옳다. 이렇게 보면 단순한 안전공사의 수칙도 지키지 않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공사부분도 그저 강풍이 불지 않았기 때문에 견뎌온 것인가를 또 물을 수밖엔 없다. 얼마나 많은 부실공사가 여전히 우리 사회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냐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이 제기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대도시 도심중앙에서 대형빌딩을 공사중 먼지량까지 계산하면서 조각낸 구축물들로 조립을 해가는 단계에 있다.
이 점에서 기술부족이나 불가항력적인 과제란 건설공사에 있어 변명의 여지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구조물은 환경오염 부식현상까지를 추정해서 어떻게 더 안전하게 구축되어야 할 것인가를 유념하고 이보다 더 나아가 미적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오늘의 시류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우아파트 도괴시점에 그대로 머물면서 시멘트·자갈·모래의 배합비율이나 축소하고 시멘트가 굳기전에 다음 작업을 진전시키며 인건비나 줄여가는 구태의연한 태도에 머물러 있음을 또다시 상기해야 하는 아픔을 가질 뿐이다.
이점에서 팔당대교는 우리 건설기술의 창피함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구조적 치부의 상징이며 증거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에서도 다시 배우는 계기를 얻어야 한다. 이 대교건설에 감독관청들은 얼마나 공정감독을 규칙대로 해왔는지,그리고 자재의 사용은 얼마나 눈가림으로 부실하게 해왔는지,또 안전규칙들은 누가 책임을 지고 관심이나 가졌는지 따지기 위해서이기보다 학습을 하는 과정으로 밝혀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근본적 맹점은 대단히 기초적인 원칙들의 묵살이나 방치에 있다. 여전히 어떤 일을 성취하는 단계별 과정에 철저함이 없고 내용의 질을 별로 중시하지 않으면서 오직 외형이나 결과만을 가치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안심하고 살 수있는 안전한 사회만들기란 사회구조속의 모든 거점에서 다 함께 철저한 안전성을 만들고 지켜야만 가능하다.
입주하기도 전에 벽이 갈라지고 물이 새는 아파트나,완공을 눈앞에 둔 거대건축물들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도 사회의 안전성을 구축하긴 어렵다. 이 무책임한 풍조는 지금 우리의 정신적 병이다. 그러니 또 진정한 반성은 우리 모두가 함깨해야 마땅하다.
지금이 어느때인데 우리는 이렇게 한심한가. 사고 당시 초속 15m의 강풍이 불었다고는 하지만 이 공사는 3년 이상이나 게속돼온 것이고 이제 마무리 3백여m의 교판콘크리트를 하고 있던 시점이다. 그러니 보통 강풍정도가 아니라 기상이변의 폭풍이 불어도 견디고 있을 만한 때에 있었다고 해야 옳다. 이렇게 보면 단순한 안전공사의 수칙도 지키지 않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공사부분도 그저 강풍이 불지 않았기 때문에 견뎌온 것인가를 또 물을 수밖엔 없다. 얼마나 많은 부실공사가 여전히 우리 사회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냐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이 제기되는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대도시 도심중앙에서 대형빌딩을 공사중 먼지량까지 계산하면서 조각낸 구축물들로 조립을 해가는 단계에 있다.
이 점에서 기술부족이나 불가항력적인 과제란 건설공사에 있어 변명의 여지를 갖지 않는다. 오히려 모든 구조물은 환경오염 부식현상까지를 추정해서 어떻게 더 안전하게 구축되어야 할 것인가를 유념하고 이보다 더 나아가 미적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오늘의 시류이다. 그러나 우리는 와우아파트 도괴시점에 그대로 머물면서 시멘트·자갈·모래의 배합비율이나 축소하고 시멘트가 굳기전에 다음 작업을 진전시키며 인건비나 줄여가는 구태의연한 태도에 머물러 있음을 또다시 상기해야 하는 아픔을 가질 뿐이다.
이점에서 팔당대교는 우리 건설기술의 창피함이 아니라 지금 이 사회의 허술함을 드러내는 구조적 치부의 상징이며 증거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에서도 다시 배우는 계기를 얻어야 한다. 이 대교건설에 감독관청들은 얼마나 공정감독을 규칙대로 해왔는지,그리고 자재의 사용은 얼마나 눈가림으로 부실하게 해왔는지,또 안전규칙들은 누가 책임을 지고 관심이나 가졌는지 따지기 위해서이기보다 학습을 하는 과정으로 밝혀보아야 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사회의 근본적 맹점은 대단히 기초적인 원칙들의 묵살이나 방치에 있다. 여전히 어떤 일을 성취하는 단계별 과정에 철저함이 없고 내용의 질을 별로 중시하지 않으면서 오직 외형이나 결과만을 가치로 하고 있다.
그러나 안심하고 살 수있는 안전한 사회만들기란 사회구조속의 모든 거점에서 다 함께 철저한 안전성을 만들고 지켜야만 가능하다.
입주하기도 전에 벽이 갈라지고 물이 새는 아파트나,완공을 눈앞에 둔 거대건축물들이 바람만 불어도 쓰러지는 현실에서는 아무리 제도를 잘 만들어도 사회의 안전성을 구축하긴 어렵다. 이 무책임한 풍조는 지금 우리의 정신적 병이다. 그러니 또 진정한 반성은 우리 모두가 함깨해야 마땅하다.
1991-03-28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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