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협서성 중부에 있는 성도 서안. 주의 호경,진의 함양,한의 장안 등 역대 왕조의 도읍이 되던 곳이다. 그 중에서도 수·당의 장안은 가장 번성했던 도읍. 당이 멸망하면서부터 쇠락하여 간다. ◆그곳에서 1036년 12월12일 이른바 서안사건이 일어난다. 국부군의 공산군 토벌 총사령관 대리 장학량이 장개석총통을 감금한 사건. 12월12일로 12가 겹쳐 「쌍십이 사건」이라고도 불리는 중국판 「12·12」다. 그 옛날 양귀비가 목욕을 즐겼다는 온천 화청지에서 잠자던 장총통은 장의 동북군 1개사단과 양호성의 서북군 1개 연대에 포위당한다. 급해진 장총통은 틀니를 목욕탕 선반에 두고 잠옷 바람으로 탈출했다가 뒷산에서 붙잡혔다고 한다.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해 장총통은 먼저 나라안을 평정하고 나중에 외적을 몰아낸다는 정책을 폈다. 그러면서 오히려 일본과 타협하며 모택동의 공산당 토벌에만 전력을 기울였던 것. 군벌이었던 아버지 장작림을 일본군에 의해 잃은 장학량은 그게 불만이었다. 그는 일본의 침략을 먼저 몰아내야 한다는 「일치항일」론자. 그래서 국부군이 공산군 토벌을 독려하러 온 장총통을 감금,국공협상을 주선한다. 국민당 정부의 약화는 이 때부터라고 해야겠다. ◆풀려난 장총통은 장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군사재판에 회부한다. 그리고 금고 10년형을 받은 그를 이튿날 사면한다. 하지만 이것은 그후 50여년에 걸친 연금유폐의 시작. 감시의 눈길은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대만으로 쫓겨간 다음에도 마찬가지. 연금생활은 장총통 사후까지도 이어진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1일 90회 생일을 맞으면서 자유에의 바람이 불었다. 정부가 나서서 망백연을 열어주면서 이등휘총통 등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이는 대만정부의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노린 제스처일 수도 있다. 또 그의 민족단결정신을 뒤늦게나마 인정한 장씨 아닌 이씨 정권의 배려였다 할수도 있겠고. 그가 10일 미국행한 것으로 알려진다. 전처와 자녀들을 만날 목적으로. 이 또한 시대의 흐름 때문인가.
1991-03-13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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