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슈켄트 한·소 원탁회의에 다녀와서/전인영 서울대교수

타슈켄트 한·소 원탁회의에 다녀와서/전인영 서울대교수

전인영 기자 기자
입력 1990-12-19 00:00
수정 1990-12-19 00:00
  • 기사 읽어주기
    다시듣기
  • 글씨 크기 조절
  • 댓글
    0
◎“소는 한국의 대규모 자본투자 기대”/풍부한 자원 내세워 경협확대 희망/북한의 조기개방 가능성엔 회의적

소련과 남북한간의 삼각관계는 금년들어 크게 변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6월초의 샌프란시스코 정상회담과 9월30일의 수교 및 이번의 노대통령의 방소는 한소관계가 얼마나 급속히 변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9월초 평양을 방문한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상의 실망과 북한측의 비망록 공개를 통한 분노표시는 소·북한관계가 크게 악화되었음을 시사하는 것이 된다. 시급한 국내문제의 해결을 위해 여념이 없는 소련은 탈이념적인 「친정치사고」바탕위에서 한국과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있다.

지난 12월3일과 4일 양일간에 걸쳐 소련의 우즈베크공화국 수도인 타슈켄트에서,한국의 국제관계연구소(소장 최종기)와 소련의 「세계경제 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소장 마르티노프)의 공동주최로 열린 한소 원탁회의에서는 새로운 국제질서하에서의 소련과 남북한간의 이자 또는 삼자관계가 검토되고 논의되었다.

회의에서는 주로 한소간의 경제협력 필요성과 문제점·동북아정세·남북한문제와 전망,소·북한관계,북한문제가 솔직하고 진지하게 논의됐다. 한편 우즈베크공화국의 학자들은 우즈베크공화국의 풍부한 자원과 지정학적 위치 및 20만명의 한인사회를 지적하면서 한국과의 다각적인 경제협력을 희망했다. 첫날 상오 회의에서 한국측은 아·태지역의 문제점과 정치적 협력 및 비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소련측은 페레스트로이카의 영향으로 동아시아와 한반도에도 상호의존성이 나타나고 안보와 협력면에서 발전이 있었으나 한반도에는 아직 냉전이 가시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소련은 남북대화를 지지하고 남북한이 교류협력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임무를 지닌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이 얼마나 빨리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느냐에 관해서는 시간을 요할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소 경제협력문제에 관해서 소련측은 그들의 자원 및 기술상의 잠재력을 강조하고 경제협력이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됨을 강조했다. 소련측은 실질적으로경제협력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음을 시인하면서,소련은 기술의 판매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투자에 더관심이 있음을 지적하고,지금이야말로 좀더 연구하고 행동하여야 할 시기라고 역설했다. 소련은 한국의 조심스럽고 소규모적인 투자에 좌절감을 느끼는 듯했다.

이에 대하여 김덕중 교수는 소련과의 경제협력에 있어 유럽보다는 한국 및 대만의 기업들이 더욱 적합함을 강조한후 한국 기업들은 국제사회에 속하여 국제적 관행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소련에 진출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 기업들이 소련에서의 기회를 찾고 있지만,소련 사회의 관료화와 환율 등으로 복잡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소련측은 소련 정부의 역할을 잘못 인지하고 있다면서,경화들이 많이 사용되고 있고 지방당국과도 교섭들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전망했으나 한국측은 아직 낙관할 수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한소 경제협력에 있어서 양측이 모두 문제점이 많음을 인정하면서도 소련측은 지금이 적기이고 투자가 장기적인 과정으로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 반면에 한국측은 소련의 관료주의,환율적용문제,시장경제체제의 미비,중앙­지방간의 분권문제 등 복잡한 문제 때문에 소규모 투자를 선호하고 신중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소 연방과 각 공화국의 주권 또는 분권문제는 매우 심각한 문제로 보였다. 참석자 중에는 소련내의 권력문제에 한국이 개입하지 말도록 권고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이는 소수의 견해로서 동료들의 반박을 받았다. 이 문제는 만일 한국 기업들이 소 연방과 각 공화국간의 미묘한 관계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레닌그라드에서는 경제사정의 악화와 더불어 모스크바 중앙에 대한 반감을 느낄 수 있었으며,우즈베크공화국에서는 스스로가 주권국가임을 강조하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도 있었다.

한소 경제협력문제 다음으로 중요하게 논의된 사항은 북한과 남북한관계에 관한 것이었다. 소련 학자들은 북한의 변화나 적응능력에 대해 한국측 참석자들 보다 부정적인 듯 했다. 소련측은 우리가 북한정권과 주민들의 이익을 혼동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현 지도층이 몰락하기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지를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측의 견해는 북한이 잘못되면 한국도 충격을 받게 되므로 급격한 북한의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고 북한을 코너로 모는 일은 삼가야 한다는 신중론을 전개했다. 쿠나제 박사는 한국측의 북한변화 가능성 지적에 대하여,북한에는 변화가 없을지도 모르며 소련의 영향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중국의 개혁이 오랜 시간을 필요로 했고 아직도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상기시키면서,북한이 종합적인 개혁을 추진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회의적인 전망을 했다. 소·북한관계에 있어서 한국측은 북한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고 한국과의 대화에 응하게 된 배경에는 소련의 영향력이 작용했음을 지적했다. 이에 대하여 소련측은 그들의 영향력에 한계가 있다고는 했으나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부인하지 않았다. 소련측은 북한이 중국과의 관계를 조정하기 위해서라도 소련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고 있다고 강조하면서 만일 소·북한관계가 파탄에 이를 경우 남북한 모두에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신중을 기해야 된다고 피력했다.

소련측 참석자 중에는 북한의 경제난 해결방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하여,한국모델을 택하는 길 뿐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참석자는 소련을 통해 간접적으로 북한을 지원하는 방법도 가능하지 않느냐는 사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2일간의 회의를 통해서 느낀 것은 소련 지도층이 심각한 국내문제로 인하여 고심하고 있으며,경제문제를 완화하기 위하여 많든 적든 간에 한국의 경제협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으며 국내문제 해결에 당장 도움을 주지 못하는 북한과의 관계에는 크게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는 점이다. 따라서 소련은 한국의 대소 접근에는 경제적 관점에서 환영하지만 느린 속도와 신중한 경제협력 자세에 대하여는 불만을 느끼고 있는 듯이 보였다. 북한의 비난이나 항의에 대해서 소련으로서는 신경 쓸 여유가 없거나 결국 북한도 언젠가는 변할 것이라는 전망을 하면서 소·북한 관계가 너무 악화되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도록 양국관계를 조정하고 관리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1990-12-19 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close button
많이 본 뉴스
1 / 3
탈모약에 대한 건강보험 적용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탈모는 생존의 문제”라며 보건복지부에 탈모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통령의 발언을 계기로 탈모를 질병으로 볼 것인지, 미용의 영역으로 볼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정치권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당신의 생각은?
1. 건강보험 적용이 돼야한다.
2. 건강보험 적용을 해선 안된다.
광고삭제
광고삭제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