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정상의 「간접대화」 시작/북한대표단 청와대 방문의 의미

남북한 정상의 「간접대화」 시작/북한대표단 청와대 방문의 의미

이경형 기자 기자
입력 1990-09-05 00:00
수정 1990-09-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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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대통령,통일의지 분명히 밝힐 듯/연총리 단독접견때 구두메시지 전달/체제인정ㆍ차관공여 제의등 포함 예상

남북 고위급회담의 북한측 대표단이 4일 입경함에 따라 노태우대통령이 오는 6일 이들을 접견하는 「청와대예방」행사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연형묵정무원총리등 북한대표단의 노대통령 예방은 우선 분단 45년이후 최초로 「적대국」 일방의 내각수반이 상대방의 국가원수를 공식 표경한다는 점에서 대단한 의미를 지닌다.

물론 지난 72년 「7ㆍ4공동성명」 발표직전인 같은해 5월 당시 이후락중앙정보부장이 김일성 북한주석을 비밀 면담한 데 이어 11월 2차 평양 남북조절공동위원장 회의때 이부장이 김주석을 면담했다. 북한의 공동위원장대리인 박성철부수상이 「7ㆍ4성명」 직전인 6월1일 비밀면담에 이어 같은해 12월 3차 서울회의때 박정희대통령을 예방한 전례는 있다.

그러나 「7ㆍ4 공동성명」직후의 이같은 교차면담은 상호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비공식적인 성격이었다면 이번 「예방」은 정무원총리라는 북한 내각의 수장이 공식적으로 우리의 대통령을 예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조절위가 남북 당국간의 일종의 임의기구라면 이번 남북 총리회담은 이미 정부대 정부의 공식회담기구라는데서도 그 성격차이의 일단을 알 수 있다.

우리 정부가 이번 회담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양국정부」라는 명칭을 사용한 배경도 바로 여기에서 연유한다.

또다른 의미는 북한측이 노대통령의 예방시 속기사를 대동하겠다는 뜻을 먼저 희망한데서 발견할 수 있다.

북한측은 당초 노대통령의 「얘기」를 녹음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해 왔으나 청와대 당국은 국가원수 예방시 녹음기를 사용한 관례가 없을 뿐 아니라 의전상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거절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측이 노대통령의 대화내용을 한자도 빠뜨리지 않고 기록하겠다는 것은 뒷날 「어떤증거」로 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는지는 몰라도 기본적으로는 우리측 최고통치권자가 남북간의 긴장완화ㆍ관계개선ㆍ평화통일에 대한 어떤 생각과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보고 북한측의 통치권자인 김일성주석에게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따라서 연총리 등의 청와대 예방은 노대통령과 김주석 간의 「필담」대화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욱이 오는 10월18일 평양의 2차 고위급회담시 우리측 강영훈국무총리가 김일성주석을 면담할 예정이고 똑같은 기록절차가 상응하게 이뤄질 것인 점에 비추어 볼 때 남북 정상간의 대화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된다.

노대통령이 연총리 등을 접견하게 되면 남북 관계개선에 관한 평소의 생각을 매우 솔직하고 허심탄회하게 얘기할 것으로 보인다.

노대통령은 마침 4일 상오 58회 생일을 맞아 청와대비서실간부들의 축하를 받는 자리에서 기자가 『연총리에게 무슨말을 할 것인가』라고 질문하자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평소 내가 하던 말을 그대로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아직 구체적인 접견절차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노대통령은 북측 대표단 10명의 공동접견 직전이나 직후 연총리만 단독으로 접견,김일성주석에게 보내는 은밀한 구두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보인다.

이 구두메시지는 고도의 보안을 전제로 ▲김일성­김정일체제인정 및 불간섭 보장 ▲북한의 핵안전협정 가입시 주한미군의 점진적ㆍ단계적 철수용의 ▲남북 막후대화 채널의 재가동 ▲양국 정부차원의 금강산 공동개발 추진 ▲비공개 대북차관 공여제의 등이 포함될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 고위급회담의 두차례에 걸친 회의가 다분히 대외적인 「의식」이라는 면이 강조된다면 노대통령의 북한대표단 접견은 이번 회담의 실질적인 농축액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대통령의 김일성주석에 대한 메시지 전달에 따른 회답은 10월 평양회담에 참석하고 돌아오는 강총리편에 어떤 내용으로 든 담겨질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 남북한 당국간에 불신의 골이 깊어 관계개선의 수준이나 속도를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해도 노대통령의 진지한 남북관계 개선의지가 굴절없이 이번 기회에 전달되면 의외로 남북 정상의 대좌가 내년쯤에는 성사될 가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이경형기자>
1990-09-05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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