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아랍친구」를 잃고 있다”/아랍인이 본 중동사태

“미국이 「아랍친구」를 잃고 있다”/아랍인이 본 중동사태

이기동 기자 기자
입력 1990-08-19 00:00
수정 1990-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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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오니즘」 일방지원… 「범아랍」 부추겨/미 군사개입에 식민 피해의식 고조

우리는 세계문제를 미국적 시각 내지 서방적 시각에서 보는 데 익숙해 있다. 그것은 서방이 세계의 지배적 세력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뉴스의 공급원이 서방이라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 중동문제도 예외가 아니다. 미국의 뉴욕 타임스지는 지난 10일자에서 이번 사태를 아랍인의 시각에서 본 글을 싣고 있다. 필자 카멜 S 아부 자비르는 정치학자이며 중동문제연구 요르단센터 소장이다.

【카멜 Sㆍ아부 자비르 중동문제연구소 요르단센터 소장】 이번 페르시아만사태에서 가장 비극적이고 유감스러운 일 가운데 하나가 부시 미국대통령이 이 지역에 미군을 파견한 것이다.

관련당사국을 모두가 상대의 의도를 고의로 곡해하고 그릇된 행동을 취하고 있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부시대통령이 취한 행위는 미국이 보호해주려고 하는 바로 그 국가에서도 누를 끼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이 지역에서 친구도 잃고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게 될지 모른다.

아랍세계를 하나로 묶어주는 아랍민족주의가 회교정통주의를 대신해 다시 등장할 조짐이 벌써 나타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부터 아랍인들은 서방에 대한 좌절과 분노의 감정을 계속 키워왔다. 이런 감정은 때에 따라 누그러진 적은 있으나 완전히 없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서방국들은 계속 아랍인들을 자극했다. 이스라엘과 시오니즘을 무조건 지지하며 아랍인을 저급한 인종으로 치부했다. 아랍인들의 가슴속에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은 더욱더 깊어갔고 결국 범아랍민족주의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번 페르시아만사태가 일어나기 전에 아랍세계는 사회ㆍ정치ㆍ경제ㆍ정신적으로 이미 위기상태에 가 있었다. 이스라엘은 정치ㆍ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서방친구들이 수두룩하지만 아랍인들은 이런 서방친구가 없었다. 그뿐 아니라 아랍인들은 서방국 전체가 사사건건 자신들을 괴롭히고 박해한다고 느껴왔다.

최근 수십년간에 걸쳐 페르시아만 지역의 아랍국들은 눈에 띄게 변모됐다. 그러나 이들은 중요한 한가지 사실,즉 국가의식을 확립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것이 이루어졌더라면 국민들은 국가에 대한 소속감을 갖게 되고 범아랍민족주의 감정은 그만큼 줄어들게 됐을 것이다.

모든 아랍인들은 요르단,시리아,혹은 사우디아라비아라는 한 나라의 국민이라는 생각과 「아랍인」이라는 의식 사이에 수시로 혼란을 겪는다. 그러다 위기의 순간이 오면 범아랍주의 감정이 강해진다. 그런 위기의 순간에 서방의 압력이 가해지지 않고 서방세계로부터 좀더 합리적인 대우를 받았더라면 이라크 이집트 레바논 등 국가단위의 민족주의가 뿌리내렸을 것이다.

서방세계로부터 압력을 심하게 받을수록 아랍인들의 국가의식은 더욱더 약해진다. 이런 서방의 압력은 시리아 리비아 이라크 등 대상을 바꿔가며 계속됐다.

아랍인들의 태도는 평화협정 체결에 임하는 이스라엘의 비타협적인 태도로 인해 더 악화됐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도 서방국들은 흔히 이 점을 의도적으로 간과한다.

지금 아랍세계 지도자들 대부분은 이런 고립무원의 상황에서 나온 사람들이다. 1980년대에는 대내외적으로 이런 압력이 증대되었다. 『우리는 고립됐고 비난받고 있다』는 기분이 아랍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수십년 동안 서방세계는 계속 「중동의 적」을 만들어냈다. 60년대는 가말 압델 나세르,70년대는 아야툴라 루홀라 호메이니,그리고 80년대와 90년대에는 무아마르 엘 카다피와 사담 후세인이 그들의 적이 되었다.

서방이 아랍에서 원하는 것은 친구가 아니라 「도구」일 뿐이며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서방이 아랍을 위해 무슨 일을 하는 법은 없다는 기분이 아랍인들 사이에 높아져갔다.

고전적 의미의 서방 군사식민주의가 아랍지역에 남아있다는 생각은 최근 몇십년 사이에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번의 군사개입사태는 이런 생각이 다시금 강하게 들게 만들었다. 서방 강대국들은 이 지역에 있던 병사와 막사를 잠시 다른 곳으로 옮겨놓았을 뿐이지 아주 떠난 것이 아니며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 그들을 「응징」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요르단을 보자. 요르단은 1921년 건국이래 이 지역에서는 제일 꾸준히 친서방노선을 지켜온 나라였다. 그런데도 예루살렘과 웨스트뱅크를이스라엘에 빼앗겼을 때 요르단은 서방으로부터 어떤 지원도 받지 못했다.

1967년이후 20여년 동안 후세인왕은 이스라엘을 불법점령지에서 몰아내기 위해 서방의 지원을 구하려 애썼다. 최근 3년간 팔레스타인인들이 인티파다(봉기)를 계속하는 동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어린이와 부녀자들에 대해 저지른 가혹행위에 대해 서방의 진보주의자들은 놀라울 정도로 침묵을 지켜 그 가혹행위를 묵인해주었다. 이런 것이 결국 범아랍주의 감정과 과격주의를 부추겼다.

아랍인의 생명ㆍ재산 심지어 영혼까지도 값싼 것이어서 마음대로 빼앗아가도 된다는 생각이 생겨난 것이다. 온건파든 과격파든 아랍인들이란 서방사람들 눈에는 모두 한가지로 보인다. 사담 후세인은 이런 역사와 환경이 만들어낸 산물이다.

그가 서방과 이스라엘로부터 배운 게 있다면 그것은 힘이 곧 정의라는 생각이다.

아랍세계에 이런 반성도 나타나게 됐다. 아랍의 부는 소수의 특권국가들에만 한정된 것인가. 대부분의 아랍국이 계속 가난을 면치 못하는데 어째서 몇 안되는 산유국 왕국만 부를 누리는가. 경제정의는 어디로 갔는가.

이라크는 이란과의 전쟁에서 비싼 대가를 치르며 아랍세계 전체를(어쩌면 서방세계까지) 지켰다. 이란혁명이 주변국으로 퍼졌으면 세계는 어디로 갔을까. 아랍형제국들은 왜 이런 점을 고려해 서로 돕지 못하는가. 이런 반성들이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이번 페르시아만사태를 국경침범이라는 법적 차원에서만 보면 안된다. 값싼 원유확보에만 눈먼 산업국가들에 대항하는 범아랍 적대감의 표출이라는 차원에서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라크가 쿠웨이트서 철수하는 대신 이스라엘도 점령지에서 물러나게 하는 방안을 미국은 심각히 고려해봐야 한다.<정리=이기동기자>
1990-08-1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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