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로송환 반대등 트루만 고집이 협상 늦춰/쉽게 끝날전쟁,2년 더 끌어 희생자만 늘어
한국전쟁은 3년여를 끌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남긴 것은 물론 전쟁이 끝난지 3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과 북사이에 남겨 놓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무부에서 미국의 극동정책 수행에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딘 러스크씨(81ㆍ뒤에 국무장관ㆍ사진)는 최근 발간된 회고록 「내가 본대로」(As I Saw It)에서 한국전쟁은 발발 1년만에 끝날 수도 있었다고 주장,관심을 모으고 있다.
러스크씨는 이 회고록에서 한국전의 휴전제의는 이제까지 알려진 것처럼 소련측이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요청에 따라 추진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51년 7월 미국무부의 요청으로 전주소대사 조지 케넌씨가 뉴욕에서 야콥 말리크 유엔주재 소련대사를 비밀리에 만나 전쟁발발 이전 상태인 38선으로 서로가 철수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낼 것을 제의하고 이에 흥미를 느낀 소련이 휴전협상 개시를 공포하게 됐는데 이 단계에선 미소가 모든 휴전협상의 빠른 마무리를 열렬히 희망,한국전쟁은 이때 끝날수도 있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휴전협정은 트루먼 당시 미대통령이 38선이 아니라 ▲당시 미국측에 유리했던 전선을 유지하는 선에서 휴전하고 ▲전쟁 후 북한과 중국의 포로들을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되돌려 보내지 않겠다는 2가지 결정을 내림으로써 2년이상 지체됐다고 러스크는 말하고 있다.
그는 국무부와는 달리 군부에서는 당시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었던 전선을 고수할 것을 고집했고 트루먼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하고 트루먼은 또 2차대전 후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소련군이 자신의 뜻과는 달리 소련에 돌아간 후 스탈린에 의해 심하게 탄압을 받았던 점 때문에 포로송환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러스크는 이어 『나는 미국이 이 두가지 문제를 고집할 경우 협상이 지연될 것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의 의견에 강력히 동의했다』고 밝혔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한국전쟁은 3년여를 끌면서 수많은 인명피해를 남긴 것은 물론 전쟁이 끝난지 3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치유되지 않는 깊은 상처를 남과 북사이에 남겨 놓았다.
한국전쟁 당시 미국무부에서 미국의 극동정책 수행에 핵심적 역할을 맡았던 딘 러스크씨(81ㆍ뒤에 국무장관ㆍ사진)는 최근 발간된 회고록 「내가 본대로」(As I Saw It)에서 한국전쟁은 발발 1년만에 끝날 수도 있었다고 주장,관심을 모으고 있다.
러스크씨는 이 회고록에서 한국전의 휴전제의는 이제까지 알려진 것처럼 소련측이 먼저 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요청에 따라 추진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51년 7월 미국무부의 요청으로 전주소대사 조지 케넌씨가 뉴욕에서 야콥 말리크 유엔주재 소련대사를 비밀리에 만나 전쟁발발 이전 상태인 38선으로 서로가 철수하는 조건으로 전쟁을 끝낼 것을 제의하고 이에 흥미를 느낀 소련이 휴전협상 개시를 공포하게 됐는데 이 단계에선 미소가 모든 휴전협상의 빠른 마무리를 열렬히 희망,한국전쟁은 이때 끝날수도 있었다는게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휴전협정은 트루먼 당시 미대통령이 38선이 아니라 ▲당시 미국측에 유리했던 전선을 유지하는 선에서 휴전하고 ▲전쟁 후 북한과 중국의 포로들을 그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되돌려 보내지 않겠다는 2가지 결정을 내림으로써 2년이상 지체됐다고 러스크는 말하고 있다.
그는 국무부와는 달리 군부에서는 당시 유리한 지형을 차지하고 있었던 전선을 고수할 것을 고집했고 트루먼 대통령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회고하고 트루먼은 또 2차대전 후 독일군에 포로로 잡혀 있던 소련군이 자신의 뜻과는 달리 소련에 돌아간 후 스탈린에 의해 심하게 탄압을 받았던 점 때문에 포로송환에 반대했다고 말했다.
러스크는 이어 『나는 미국이 이 두가지 문제를 고집할 경우 협상이 지연될 것을 인정하면서도 대통령의 의견에 강력히 동의했다』고 밝혔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1990-07-28 4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