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소 접촉 정치하듯 소리내서야…”
요즈음 신문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큼직큼직한 한ㆍ소관계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우선 최근에 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소외교는 지나치게 모양에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상대방이 총영사급의 관계격상을 주장하는 데 비해 우리는 적어도 대표부급을 고집했고 협상의 결과 우리 주장대로 되었다고 해서 바로 이게 무슨 큰 외교적 압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흥분하고 있다. 총영사급의 관계와 대표부급의 관계가 갖는 외교적 중요성의 차이를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외교적 중요성보다 정치적 의미가 더 크다는 사실을 몰라서도 아니다.
○‘격’에 지나치게 매달려
잘못되었다는 것은 관계개선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개선의 격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대표부를 개설하기로 하는 합의를 얻어냈다고 해서 실제로 달라질 게 별로 없는 데에도 마치 격의 변화가 관계 그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모스크바에 영사처장이 부임한 지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대표부로 승격시키려는 승진운동이 벌어진 셈이다. 도착하자마자 승격운동을 해야할 처지였다면 왜 처음부터 격을 높여 시작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당연히 나온다. 대표부로 승격되면 다시 대사관으로 승격하기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상대가 이쪽의 카드를 들여다보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외교협상은 우리에게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지켜야 할 체면을 지키면서 당당히 나가야 한다. 대표부나 대사급이 관계 격상에만 집착하여 상대방에 매달려 졸라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기보다 한ㆍ소 쌍방에 모두 이로울 게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한ㆍ소 관계개선을 바라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한을 풀어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냉전의 두터운 벽 때문에 공산권은 지난 45년동안 우리 외교에 출입금지의 지역이었고 소련은 그 금역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대한항공을 타고 유럽을가면서도 우리는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 설움을 겪어야 했고 유엔에 가입하려 해도 소련과 중국의 거부권 때문에 벽에 부딪치곤한 한을 갖고 있다. 소련과의 관계개선이 그 한의 일부를 해소시켜 주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풀이를 넘어서는 보다 중요한 이유를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한ㆍ소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긍정적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ㆍ소 관계개선의 결과 소련이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압력을 가하게 됨으로써 남북한이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정착과 통일의 길을 걷도록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대단히 중요한 고려사항이 있다.
○소의 대북 압력엔 한계
첫째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소련의 군사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소련이 북한에게 불리한 결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 소련이 바라고 있는 것은 북한이 경직된 정치 경제적 고립을 풀고 개방과 개혁의 새로운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파탄을 피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한ㆍ소관계의격상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둘째 한ㆍ소관계의 개선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궁지로 몰아 넣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ㆍ소 관계에서 우리의 외교적 압승이 북한의 참패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남북한 관계에서 우리가 절대 우위를 추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절대안보의 추구도 공동안보의 신사고에 의해 대치되어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의 안보와 성장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한민족공동체 구현에 장애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한ㆍ소 관계개선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를 무겁게 짓눌러 온 냉전의 빙하를 해소시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좀더 일찍 실현되었더라면 대한항공의 격추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는조용해야 한다. 떠들어대면 될 것도 안되는 게 외교의 세계이다. 소리가 큰 외교는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조용한 외교는 한ㆍ소 관계에서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우리쪽에서 나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소련은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소리를 쳤기 때문에 우리가 꼬리를 잡히고 만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 우리 쪽에서 경쟁하는 듯 소리를 내게 되면 꼬리가 하나만 잡히는 게 아니라 두개 세개가 한꺼번에 잡히고 만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는 국내에서 해야지 밖에서 해서는 안된다.
닉슨대통령이 외교정책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미ㆍ중 데탕트를 이루어 내면서 그는 정치와 외교를 구별했을 뿐 아니라 비공개 외교를 위주로 했다. 그래서 72년 닉슨의 중국방문이 금세기 최대의 외교쿠데타로 평가되는 것이다.
한ㆍ소 관계에서도 정상외교의 가능성이 미리 예고되지 않은 채 갑자기 실현된다면 그 의미는 더욱 엄청날 것이다. 비밀외교를 옹호하거나 주창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무떠들어댐으로써 외교적 실리를 잃어버리게 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도대체 정상간의 친서교환이 이렇게 사전에 알려진 것은 일찍이 외교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내용보다 친서가 전달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크게보도됨으로써 내용을 지레 짐작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외교는 선전이 아니다
지금 한ㆍ소관계에서 우리가 소련을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소련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소련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로 진출함에 있어 한국을 이용하고 있다. 일본에의 접근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는 제각기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기분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흥분해서도 안된다. 제발 이젠 조용히 차분한 마음으로 실리외교를 해야겠다.
요즈음 신문지상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는 큼직큼직한 한ㆍ소관계에 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뭔가 잘못되어 있다는 느낌을 금할 수 없다.
우선 최근에 정부가 취하고 있는 대소외교는 지나치게 모양에 집착하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상대방이 총영사급의 관계격상을 주장하는 데 비해 우리는 적어도 대표부급을 고집했고 협상의 결과 우리 주장대로 되었다고 해서 바로 이게 무슨 큰 외교적 압승이라도 되는 것처럼 흥분하고 있다. 총영사급의 관계와 대표부급의 관계가 갖는 외교적 중요성의 차이를 몰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다. 외교적 중요성보다 정치적 의미가 더 크다는 사실을 몰라서도 아니다.
○‘격’에 지나치게 매달려
잘못되었다는 것은 관계개선 그 자체가 아니라 관계개선의 격에 대해 우리가 지나치게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과 대표부를 개설하기로 하는 합의를 얻어냈다고 해서 실제로 달라질 게 별로 없는 데에도 마치 격의 변화가 관계 그 자체의 변화를 가져올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모스크바에 영사처장이 부임한 지가 한 달도 채 안되었는데 대표부로 승격시키려는 승진운동이 벌어진 셈이다. 도착하자마자 승격운동을 해야할 처지였다면 왜 처음부터 격을 높여 시작하지 않았느냐는 질책이 당연히 나온다. 대표부로 승격되면 다시 대사관으로 승격하기 위해 모든 외교적 노력을 집중하게 될 것이다. 상대가 이쪽의 카드를 들여다보는 상황에서 진행되는 외교협상은 우리에게 대단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차분하게 지켜야 할 체면을 지키면서 당당히 나가야 한다. 대표부나 대사급이 관계 격상에만 집착하여 상대방에 매달려 졸라대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은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기보다 한ㆍ소 쌍방에 모두 이로울 게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우리가 한ㆍ소 관계개선을 바라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한을 풀어주기 때문만은 아니다. 냉전의 두터운 벽 때문에 공산권은 지난 45년동안 우리 외교에 출입금지의 지역이었고 소련은 그 금역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대한항공을 타고 유럽을가면서도 우리는 앵커리지를 경유해서 먼길을 돌아가야 하는 설움을 겪어야 했고 유엔에 가입하려 해도 소련과 중국의 거부권 때문에 벽에 부딪치곤한 한을 갖고 있다. 소련과의 관계개선이 그 한의 일부를 해소시켜 주는 효과가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풀이를 넘어서는 보다 중요한 이유를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한ㆍ소 관계개선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긍정적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ㆍ소 관계개선의 결과 소련이 북한의 대남정책 변화를 유도하는 압력을 가하게 됨으로써 남북한이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을 통한 평화정착과 통일의 길을 걷도록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적어도 두 가지의 대단히 중요한 고려사항이 있다.
○소의 대북 압력엔 한계
첫째 소련의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소련의 군사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소련이 북한에게 불리한 결정을 강요할 수는 없다. 소련이 바라고 있는 것은 북한이 경직된 정치 경제적 고립을 풀고 개방과 개혁의 새로운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이 경험하고 있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파탄을 피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바람이 한ㆍ소관계의격상과는 무관하다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둘째 한ㆍ소관계의 개선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북한을 궁지로 몰아 넣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한ㆍ소 관계에서 우리의 외교적 압승이 북한의 참패로 인식되어서는 안된다. 남북한 관계에서 우리가 절대 우위를 추구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절대안보의 추구도 공동안보의 신사고에 의해 대치되어야 한다. 북한이 스스로의 안보와 성장에 대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 한민족공동체 구현에 장애물로 등장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물론 한ㆍ소 관계개선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것은 한반도를 무겁게 짓눌러 온 냉전의 빙하를 해소시키는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그것이 좀더 일찍 실현되었더라면 대한항공의 격추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는조용해야 한다. 떠들어대면 될 것도 안되는 게 외교의 세계이다. 소리가 큰 외교는 선전에 지나지 않는다.
조용한 외교는 한ㆍ소 관계에서 더욱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우리쪽에서 나는 소리가 크면 클수록 소련은 속으로 웃고 있을 것이다. 소리를 쳤기 때문에 우리가 꼬리를 잡히고 만 셈이기 때문이다. 더욱 우리 쪽에서 경쟁하는 듯 소리를 내게 되면 꼬리가 하나만 잡히는 게 아니라 두개 세개가 한꺼번에 잡히고 만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정치는 국내에서 해야지 밖에서 해서는 안된다.
닉슨대통령이 외교정책에서 많은 업적을 남긴 것은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미ㆍ중 데탕트를 이루어 내면서 그는 정치와 외교를 구별했을 뿐 아니라 비공개 외교를 위주로 했다. 그래서 72년 닉슨의 중국방문이 금세기 최대의 외교쿠데타로 평가되는 것이다.
한ㆍ소 관계에서도 정상외교의 가능성이 미리 예고되지 않은 채 갑자기 실현된다면 그 의미는 더욱 엄청날 것이다. 비밀외교를 옹호하거나 주창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너무떠들어댐으로써 외교적 실리를 잃어버리게 한 것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이다. 도대체 정상간의 친서교환이 이렇게 사전에 알려진 것은 일찍이 외교사에 그 유례를 찾기 힘들다. 내용보다 친서가 전달된다는 사실 그 자체가 크게보도됨으로써 내용을 지레 짐작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다.
○외교는 선전이 아니다
지금 한ㆍ소관계에서 우리가 소련을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소련이 우리를 필요로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소련은 한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로 진출함에 있어 한국을 이용하고 있다. 일본에의 접근이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한국을 더욱 중시하고 있는 것이다.
외교는 제각기 치밀한 계산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다. 기분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흥분해서도 안된다. 제발 이젠 조용히 차분한 마음으로 실리외교를 해야겠다.
1990-03-29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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