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 시인한 북의 겉과 속(사설)

「땅굴」 시인한 북의 겉과 속(사설)

입력 1990-03-16 00:00
수정 1990-03-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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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을 밀수출하는 북한선박이 인도네시아에서 적발,억류되고 있다는 1단짜리 외신이 전해지던 날 판문점에선 남침용 땅굴과 「장벽」문제를 놓고 남북한이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은 간단명료하다. 도대체 북한은 휴전선 전역에 걸쳐 그 많은 땅굴을 왜 팠는가 하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 그들의 대남방송을 통해 땅굴 굴착 사실을 시인했다. 그러고는 엊그제 판문점 군사정전위에서는 다시 시치미를 떼고 부인했다. 오히려 한술 더 떠 우리측의 제4땅굴 공동조사 제의를 걸고 들어 자기측 조사단 60명을 4대의 헬리콥터에 태워 땅굴조사차 보낼 테니 당장 이를 허용하고 신변을 보장하라고 했다. 역습에 적반하장도 이쯤되면 할말을 잊는다.

우리는 아예 처음부터 있지도 않은 장벽논쟁 따위 소모적인 입씨름을 원치 않았다. 제4땅굴 역시 그 굴착경위와 실재를 파악하고 그것이 객관적으로 명백히 「남침용」이라는 사실만을 내외에 알리려 했다. 땅굴은 분명히 침략용이지만 우리는 전쟁을 원치 않기 때문에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전쟁수단으로서의 땅굴은 세상에 폭로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은 대남방송에서 땅굴을 판 사실은 시인했지만 그것은 남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평화통일을 하기 위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 놨다. 최신무기와 현대장비를 갖춘 「정예병력」이 땅굴을 통해 일거에 휴전선을 돌파하여 40여km 지근거리에 있는 서울을 겨냥하는 데도 그것이 평화통일을 위한 것이냐 하는 것은 묻기에도 쑥스럽다. 사실은 사실이어서 워낙 속일 수는 없으니까 대남방송으로는 시인하고 그것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공공연히 병인원을 비무장지대 공중에 띄워 샅샅이 이쪽을 정찰해 보겠다는 속셈이 분명하다. 그런 모습이 본래 그들의 속성이고 실체라고 보면 그만이지만 아무래도 제4땅굴이 퉁겨질 때 이상으로 안타깝고 놀랍다.

지난 70년대초 월남전이 한창일 때 월맹측의 지원을 받는 베트콩이 활용한 것이 이 땅굴이었다. 미국측의 융단폭격으로도 파괴시킬 수 없었던 이 땅굴을 이용한 베트콩들의 기습작전엔 곤욕을 치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서로 무장하지 않고 교전하지 않는다는 비무장 산악지대 북쪽의 지하 1백45m에서 남으로 2km나 파내려온 땅굴이 침략용 아닌 평화통일용이라면 그것을 누가 믿겠는가.

땅 위에서는 대화를 하자면서 땅 밑으로는 두더지처럼 땅굴이나 파는 음흉한 계략으로는 이 땅에서 전쟁의 그림자를 지울 수 없고 남북관계도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 상대방의 이해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자신을 열고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대화의 요체이다. 앞과 뒤,겉과 속이 다르면 금방 속셈이 폭로되고 대화는 성립되지 않는다. 필요하면 대화에 나서 미소를 보이지만 그 미소와 대화 속에 항상 상대를 위협하는 날카로운 비수가 감춰져 있다면 협상과 대화의 진전을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제4땅굴로 우리의 대북정책의 기조가 흔들릴 수는 없다. 북한의 어떤 대남전략에도 빈틈없이 대비하되 꾸준히 대화하고 교류하여 신뢰의 기반을 넓혀가야 한다.
1990-03-1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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