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언내언

외언내언

입력 1990-01-19 00:00
수정 1990-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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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군도」하면 알렉산드로 솔제니친이 떠오른다. 어떻게 보면 가장 비인간적인 참혹함이 문학적 가치로 전환되어 그래도 우리가 읽어낼 수는 있을 만큼 순화돼 있는 것이 「수용소군도」이다. 솔제니친이 소련의 강제노동수용소 이야기를 처음으로 썼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에 대해 당시 소련문단의 중진 시모노프의 언급에도 이런 논평이 있다. 「이 소설의 주제는 피가 흐르는 상처와 결부돼 있다. 그러나 공포와 전율의 문학을 쓴다는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대작가가 이 상처를 승화시킬 수 있었다」 ◆이 작품들은 오늘에도 우리 곁에 있지만 그러나 누구도 다시 읽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12시간의 중노동,열번씩도 반복되고 1시간씩도 계속되는 쇠철봉의 점호,그리고 단지 6시간의 잠. 솔제니친만이 아니라 특정이유없이 23년간이나 수용소군도에 잡혀있었던 미국인 알렉산더 돌전도 「그저 벌거벗은 살덩어리들」이라고만 수용소를 묘사하고 대부분의 이야기는 설명하지 않았었다. ◆이 참혹함이 우리의 땅에서 뉴스화되고 있다. 북한의정치범집단수용소. 그동안 8곳에서 12곳으로 늘고 정치범 수도 15만2천명이나 되어 있다.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너무나 흡사하다. 중노동 내용도 같고 일하는 시간도 같다. 식기와 삽과 곡괭이만주고 기수용자로부터 감자나 옥수수 씨앗을 받아 식량문제마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심한 조건인 것도 같다. 그리고 솔제니친도 없으니까 우리는 정면으로 어떤 수식도 없이 이 사실을 읽어야 한다. ◆생명의 자유조차 없는 동시대 동족의 인권을 본다는 일은 힘이 들다. 동구의 자유화바람속에 더 악화될 가능성만 갖고 있는 한국판 「수용소군도」에서는 솔제니친이 「수용소군도1」에서 쓴 「조국으로의 탈주」까지도 불가능할 것이다. 지울 수 없는 참혹함을 참으며 통일의 노력에 더 힘을 기울이는 수밖엔 없다.

1990-01-19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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